2차

아야토나(인지 뭔지 모르겠다)

OHNN 2015. 6. 29. 00:06



*AU를 빙자한 날조 설정 주의





 우라카제 토나이가 사는 마을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매일같이 같은 얼굴들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마을은 고인 물처럼 적막하고 오가는 사람이 적었다. 나그네가 적은 것은 큰 도시와 제법 떨어진 위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을 뒤켠으로 자리하고 있는 큰 산도 한몫을 했다. 산은 숲이 울창하고 깊은데다가 산중턱을 지나면 사람이 오가는 길이 거의 없어 맞는 방향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을 사람들이 장작을 줍거나 버섯을 따느라 길을 내놓아도 두어 날 정도 지나면 길은 사라져 있곤 했다.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감쪽같은 일이었다. 덕분에 마을에는 소문, 이라기보다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내용인지라 사람마다 말이 틀리기는 했으나 그 중 공통된 부분은 저 산의 주인이 늑대 신령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산에 늑대가 사는 것은 맞았다. 토나이도 아주 어릴 적에 세 번째 모퉁이에 사는 한 남자가 한밤중에 산에 들어갔다가 늑대에게 팔다리가 뜯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직접 목도하지는 못했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군데군데 번진 핏자국은 본 적이 있었다. 핏자국은 여러 달 동안 흉터처럼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남자는 이틀 밤낮을 피를 쏟으며 앓다가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신이 사는 곳에서는 함부로 사냥을 하면 안되는 거야. 더군다나 늑대 신 같은 경우에는 제 비위를 거스르는 것을 좀체 참지 못하지." 그렇게 말한 것은 그의 할머니였다. 그 외에도 약초를 캐러 갔다가 수풀 사이로 긴 재색의 꼬리를 봤다든가, 바위 너머로 노란 눈동자와 마주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신은 신답게 산을 지나치게 헤집고 다니는 일만 아니라면 이유 없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은 없었고, 무엇보다 산은 그들 삶의 보고(寶庫)이자 원천이었다. 산 너머에서는 전쟁이 끊이질 않았지만 이곳에까지 분쟁이 번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가파른 산길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사시사철 장작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또 산에는 나지 않는 약초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조용히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토나이는 이마에 손등을 대고 마을 쪽을 내려다보았다. 밥 짓는 연기가 산의 능선을 타고 흰 뱀처럼 구물구물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아궁이불 마냥 새빨간 노을이 눈이 닿는 곳마다 스며들었다. 너무 멀리 왔나. 손등에 닿는 이마가 조금 축축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땀이 날 만한 계절은 아니었다. 그는 나뭇가지가 가득 올려진 지게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땀이 나는 것은 높은 산길을 거슬러 올라온 탓만은 아니었다. 어린 막내 동생은 계절이 바뀌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심한 감기는 아니었지만, 불을 오랫동안 땔 수 있다면 차도가 있을 것 같았다. 직접 장작을 주우러 가자는 발상은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으나 나쁘지 않았다. 동생을 위하는 착한 오빠라는 마음에 조금 우쭐해졌던 것도 같다. 그러니까…… 우쭐한 기분이 조금 과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어디서부터 길이 끊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곳까지 왔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아주 어릴 적부터 드나들던 산이었다. 공포나 위협은 쉽게 무뎌지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아직도 그는 그 옛날 보았던 핏자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는 일부러 흩뿌려놓은 것처럼 사방으로 튀어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마치 땅속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것처럼 선명한 색이었다. 토나이는 문득 소름이 잘게 돋은 뒷목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는 젖은 옷자락을 손으로 펄럭거리며 생각했다. 땀이 식으면 빨리 내려가자. 저기 아래까지 내려가면, 길이 보일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대어 고개를 숙이는데 문득 신발의 엄지발가락 부분이 닳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발을 조금 들어 닳아진 부분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짚이 닳아 매듭이 반쯤 튿어져 있었다. 짚을 새로 엮어달라고 해야하나,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붉은 빛에 눈꺼풀이 아렸다. 갈색과 붉은 색으로 촘촘히 엮어나간 나무들 사이에서 그는 '그 눈'을 보았다.

 한 쌍의 노란색 눈동자는 한 눈에 보아도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토나이는 툭, 들어올렸던 발을 땅 위로 내려놓았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마냥 요란했다. 짐승은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잿빛 털에 덮인 몸집이 부풀린 짚단 마냥 거대했다. 보통 늑대가 저렇게 큰 동물이던가, 늑대도 개과 동물이었던 것 같은데, 건넛집에서 키우는 개도 저런 크기는 아니지 않았나…… 쓸모 없는 생각들이 맹렬한 속도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토나이는 사람이 한계를 넘어선 공포와 직면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난생 처음으로 알았다. 정말이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 짐승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사람의 것과 같지 않은 눈동자의 모양새. 한 번 마주치면 눈을 뗄 수 없는, 육식동물 특유의 눈이었다. 덕분에 그는 시선을 돌리거나 도망을 가거나, 둘 중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늑대는 서두르지 않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 발치마다 낙엽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파삭파삭 울렸다. 토나이는 몸이 가라앉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나무에 등을 댄 채로 스르륵 바닥으로 주저 앉았다. 무릎이 풀린 탓이었다. 그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을 때, 그림자가 그의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짐승이 그의 위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딱 그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부모님과 할머니, 형제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형이 먹겠다던 쑥떡은 그냥 양보해줄 걸 그랬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늑대가 입을 벌렸다. 잇새로 드러난 혀가 붉었다. 짐승의 앞발이 몸을 움츠리다 못해 이제는 거의 바닥에 눕다시피 한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긴 주둥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길고 거친 털이 뺨에 스치는 느낌이 선뜩했다. 토나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축축했다. 그러니까, 늑대의 혀가. 살갗이 물어뜯기는 고통을 예상했던 토나이는, 얼굴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도 한참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한쪽 눈꺼풀을 슬쩍 들어올려 위를 쳐다보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본 잿빛 털은 이제는 사그라져가는 노을의 붉은 빛에 비추어 자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뭐지. 그는 고민했다. 나 왜 아직도 안 죽었지. 짐승의 혀가 고민하는 그의 뺨을 길게 핥아올렸다. "히익." 억눌린 숨소리가 밭게 튀어나왔다. 늑대는 그에게서 주둥이를 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낯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눈동자는 의외로 맑았다. 토나이는 잘게 눈을 깜빡이면서도 그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짐승은 이내 그의 가슴팍을 짚고 있던 앞발을 거두어갔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다음에 그 앞발이 그의 옆구리를 공을 굴리듯이 툭툭 두드렸을 때는 다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지레 놀라 몸을 둥글리고 눈만 돌리고 있자니 그 발짓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짐승은 나타날 때 그랬듯이 서두르지 않으며 천천히 사라졌다. 파삭파삭,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짐승은 숲 가운데로 사라지는 와중에 딱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다시 마주쳤을 때, 토나이는 불에 데인 것처럼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뒀다.

 토나이는 한참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쿵쿵쿵, 귓전을 때렸다.








 지게를 두고 왔다는 것을 산을 다 내려와서야 알았다. 대체 이 시간까지 어디를 다녀왔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도통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게를 잃어버린 것도 그렇고, 산에 너무 깊이 들어간 것도 잔소리를 볶자면 삼일 밤낮으로 볶을 수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늑대를 마주친 얘기까지 하자면 삼 일이 삼 개월쯤으로 길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좀 더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그 일이 사실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한참 동안 나무 아래에 누워 있던 와중에 함빡 쏟아내었던 땀은 빠르게 식었고 그러고나니 한바탕 안 좋은 꿈을 꾼 것 같은 기분만 남았을 뿐, 도무지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곳에 늑대가 있었다는 증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토나이는 매끈하고 습한 혀가 닿았던 제 뺨을 쓰다듬으며 방 구석에 앉아 생각해보았다. 물론, 생각해봤자 결론이 나는 일은 아니었으므로 이내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이틀 정도 지났을 때였다. 토나이는 잠결에 파삭파삭,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익숙해서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러고도 잠에 취해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는 마치 나뭇잎을 파먹는 벌레 소리처럼 희미하면서도 끊이질 않았다. 그는 옆에서 자고 있는 동생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마루로 나갔다. 문을 빠끔히 열자마자 찬바람이 얇은 잠옷 자락에 스몄다. 앞마당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이었다. 빛이 없어 사물들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바람은 없었으나 공기가 제법 찼다. 그는 그대로 다시 방에 들어갈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소리는 여전히 그의 귓바퀴를 간질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몸을 수그려 마루 밑에 놓아둔 신발을 천천히 꿰어 신었다. 그는 발을 끌면서 집 뒤켠으로 향했다.

 울타리를 따라 걸으면서 길게 하품을 하다가, 그는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 했다. 집의 모퉁이를 돌아 뒷마당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어두운 밤이었다. 철이 지나 아무것도 심어놓지 않은 텃밭 위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잿빛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허리께까지 올 정도로 길었다. 제 집 뒷마당에 낯 모를 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더욱이 그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 한오라기 안 걸친 상태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토나이는 한 가닥 남아있던 잠기운이 목 아래로 쑥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도 그 살빛이 희었다.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볼 때까지 토나이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을 쳐다보는 얼굴은 제 나잇대와 엇비슷해보이는 소년의 것이었지만, 키는 저보다 훌쩍 컸다. 큰 눈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러나 어딘가 사람의 생김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토나이는 왜지, 하고 생각하다가 그 눈을 쳐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노란색 눈동자.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좋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늑대 신령 아야베와 그 마을에 사는 토나이 소년이 보고싶다~ <이 생각 하나로 쓴 것

설정을 쓰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뒷내용... 없음...ㅎㅎ

내 느낌에 왠지 토나이는 4남 1녀 중 셋째쯤 될 것 같다. 막내도 첫째도 아닌... 여동생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