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산사쿠/ 끝과 시작

OHNN 2015. 7. 30. 18:26




 처음으로 길을 잃어버린 것은 11살 때의 일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매미가 울고 있었다. 산노스케는 쥐고 있던 옷자락을 툭, 놓았다. 그의 손길에 딸려 올라왔던 누군가의 멱살이 맥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뒷통수가 바닥에 부딪히면서 제법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매미울음이 그 소리를 지웠다. 하기사, 고통은 산 사람의 전유물이었으므로 이제는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산노스케는 팔뚝으로 관자놀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손목에서 쿰쿰한 땀 냄새와 쇠비린내가 함께 났다. 문득 펼쳐본 손바닥이 붉고 흥건했다. 흰 담벼락 위로 푸르게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와 그 사이로 보이는 불그레한 손바닥. 어딘가 비현실적이었다.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시체는 목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입에서부터 흘러내린 게거품이 얼굴 옆의 흙을 검게 적셨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애초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2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받은 개인 실습 과제였다. 그와 동급생들은 제각기 불안과 흥분으로 조금씩 들떠 있었다. 닌자에게 비밀 엄수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갓 신입생 태를 벗은 아이들은 아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지는 법을 배우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저마다 제가 받은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알음알음 흘리곤 했다. 산노스케가 받은 과제는 어느 성의 담벼락 안에 표식을 남기고 오는 일이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가 당연한 전제로 따라왔다.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조금은 방심을 했던 것도 같다. 수풀 속에 숨어 보초들이 지나다니는 시간과 사각지대를 파악한 것까지는 좋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경비가 삼엄했지만, 하려면 못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좀 더 앞섰다. 그는 최대한 한적한 곳을 골라 담을 타고 넘었다.

 표식을 남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늦은 오후, 해가 지는 방향의 반대편을 고른 것은 성의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 내부의 경비를 대략적으로만 파악한 것은 명백한 그의 실수였다. 아직 앳된 티가 남은 얼굴의 보초는 동작이 날래고 성급했다. 남자는 산노스케를 발견하자마자 민첩한 동작으로 그를 쫓았다. 그가 미처 담을 다시 오르기도 전에, 발목이 붙잡혔다. 산노스케는 반사적으로 거칠게 발을 털어냈다. 쿵, 등 뒤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억, 하는 단말마가 따라왔다. 불온한 소리들이었다. 산노스케는 담벼락 위에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머리부터 땅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가 보았을 때, 남자의 눈은 이미 허옇게 뒤집혀 있었다. 남자의 몸이 뭍에 나온 생선처럼 간헐적으로 퍼뜩거렸다. 명백한, 죽음 직전의 순간이었다.

 산노스케는 잠시 고민했다. 남자는 지나치게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는 다시금 담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면, 빨리 끝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급소를, 그는 이미 여러 군데 배워서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처음 사람을 죽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도 했다. 품 안에서 항상 지니고 다니는 날붙이가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몸을 수그려 남자의 옷깃을 쥐었다. 손아귀에서 퍼뜩퍼뜩, 진저리치는 감각이 진동처럼 전해졌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남자의 목에 퍼렇게 돋아난 핏줄에 날을 대며, 그는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상기했다. 목과 손목, 정수리와 가슴팍. 선생님은 사람 몸의 곳곳을 마치 지도처럼 짚어가며, 여기를 찌르면 단숨에 죽는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덧셈 뺄셈이나 다름 없이 무감했다. 딱 그만큼 무감한 느낌이었다. 손에 힘을 주자 날이 살갗 아래로 파고들었다. 단숨에 피가 솟구쳤다. 동맥을 자르면 이렇게나 피가 많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남자의 시체를 뒤로하고, 성에서 멀리 벗어날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나무 등걸이나 수풀에 손을 비벼보았지만 손금을 따라 잎맥처럼 배어든 핏물은 쉬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가 숲의 중간에서 우물을 찾았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진 저녁 무렵이었다. 깊은 곳에서 퍼올린 물은 유난히 차가웠다. 손을 담그자마자 단숨에 손마디가 빳빳해졌다. 그는 오랫동안 손을 씻으면서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건져올린 손에서는 여전히 비린내가 났다. 그것은 생선 비린내나 물 비린내와는 몹시 다른 냄새였다. 그것들이 전부 비린내, 라는 말로 엮인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불현듯 남자의 목을 찌르던 감각을 떠올렸다. 퍼득거리던 감각이 단숨에 거짓말처럼 멎는 감각. 손을 미적지근하게 적시던 감각. 그제야 산노스케는 제가 그 감각을 계속해서 곱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깜빡, 등불을 끈 것처럼 숲이 어두워졌다. 해가 완전히 산 너머로 넘어갔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본 나무들은 전부 비슷비슷해 보였다. 어느 쪽이…… 길이었더라. 이상하게도 갑자기 길이 기억나지 않았다. 걸어온 길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옷자락에 젖은 손을 닦으면서 멀거니 숲을 쳐다보았다. 차게 식은 손끝이 문득 저렸다. 그는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얼음장처럼 차가운 우물물에 손을 담궈야할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다음에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인생은 이미 그런 식으로 결정지어졌다. 그는 그 순간 불현듯, 그것을 깨달았다.

 숲이 조용하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얕은 어둠 속에서, 숲은 한 덩어리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검은 물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거대한 생물의 아가리처럼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는 그 안으로 걸어들어갈 수 없었다.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우물 앞에 천천히 쭈그리고 앉았다. 허공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때 오른편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산노스케는 멀거니 고개를 돌렸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사람은, 어딘가 지금 상황에서 비현실적이게 느껴질 정도로 친숙한 인물이었다. 사쿠베는 시선이 마주치자 잘게 눈을 깜빡였다. 그가 성큼성큼 산노스케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

"어……."

"길이라도 잃은 거야?"


 물어오는 목소리가 명확했다. 그렇구나, 이건 길을 잃은 거구나. 산노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사쿠베의 실습지가 제가 간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사쿠베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산노스케는 그 손을 잡으려다 말고 문득 손끝을 움츠렸다. "왜?" "아무것도 아냐." 성기게 맞닿은 손바닥이 따뜻했다. "너 손이 왜 이렇게 차냐." 사쿠베는 가벼운 핀잔투로 말하고는 그 손을 좀 더 단단히 잡아 그를 일으켰다.

 그들은 숲 속을 나란히 걸었다. 이미 완연한 밤이었고, 앞서 가는 사람의 뒷통수나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산노스케는 사쿠베의 등을 보면서 걸었다. 사쿠베는 신중하면서도 보폭이 큰 걸음으로 밤길을 헤쳐나갔다. "저기 있잖아." "어?" "내 손에서 무슨 냄새 나지 않았어?" 그 물음에 사쿠베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마주 잡았던 손을 들어올려 냄새를 맡아보고는 대답했다. "잘 모르겠는데." 그 간결한 대답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역시 밤의 숲은 좀 무섭네."


 사쿠베가 말했다. 그 말에 산노스케는 그의 등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숲이…… 여전히 술렁거리고 있었다. 어둠에 시야가 까마득해진다. 숨이 차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구나, 이게 무섭다는 느낌이었구나.


"그러게…… 무섭다."


 말하며, 산노스케는 좀 더 사쿠베에게 바짝 붙었다. "걷기 불편하잖아." "무서워서 그래." 사쿠베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가까이 붙어선 그를 밀어내거나 하지 않았다. 산노스케는 그의 목을 보았다. 목과 손목, 정수리와 가슴팍. 사람이 죽는 것은 정말로 쉽더라, 하고 말을 해볼까 했지만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산노스케는 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길을 잃어버릴 지도 몰라." "뭐?"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사쿠베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럼 내가 찾으러 올 수 밖에 없잖아."


 사몬으로도 충분한데. 그가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산노스케는 말을 잃었다. 그는 갑자기 어깨에 올려 놓은 손끝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술렁거리던 마음이 천천히 부풀어올랐다. 그게 손등에 낮게 스치는 머리카락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가 그 감각이, 사랑스럽다, 는 것임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물론, 그가 정말로 계속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조금 더 가까운 미래의 일이었다.









길=인생이라는 모티브를 쓰고 싶었는데 은유를 명징하면서도 우아하게 드러내는 일은 정말 어렵다...

제목은 대충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유년시절의) 끝과 (사랑의) 시작 같은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