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오소쵸로/ 이상한 이야기

OHNN 2015. 12. 21. 00:20



 쵸로마츠는 최근, 한밤중에 자꾸만 잠에서 깬다.

 여섯이 나란히 하는 이부자리가 새삼 불편할 리도 없는데 그랬다. 토도마츠가 같이 화장실을 가자고 보채는 일도 없었고, 쥬시마츠의 잠꼬대도 없었다. 여섯 중에는 제일 예민한 성격이긴 하나 20년을 형제들에게 부대끼며 살다보면 모난 부분은 으레 마모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잠을 설치는 이유는 사실, 명백했다. 자정을 한참 넘긴 어딘가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을 때면 옆자리의 누군가가 스르륵 이불 밑을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부풀었던 이불이 가라앉는 감각이 이상하게 생생했다. 딱 여섯이니 더하거나 덜한 것은 곧장 티가 났다. 그러고나면 뒤따라오는 것은 누군가의 눈길이었다. 쵸로마츠는 매번 반쯤 잠에 취한 채로 그 시선을 느꼈다. 희미하게 배어나오는 창 밖 가로등의 불빛이 사람 그림자에 지워지고, 그 위에 누군가의 시선이 얹힌다. 눈을 감고 있어도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지…… 하고 생각하다가 다시금 까무룩하게 잠에 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그게 헛꿈인지 실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들이 눕는 자리는 항상 정해져 있었고, 그것이 만약 그의 착각이 아니었다면, 한밤중에 일어나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언제나 그의 오른편에 눕는 오소마츠였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면 이번에는 왜? 하는 물음이 따라왔다.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오소마츠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는 것 역시 그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여느 때처럼 느즈막히 일어나 보는 사람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고 잔뜩 뻗친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밤중에 깨어 있는 조용함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었고, 반복되는 것은 관성을 만들었다. "쵸로마츠, 최근에 눈밑이 검군." 그렇게 말한 것은 카라마츠였다. 쵸로마츠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을 설쳐서 그래."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거야?" "그게, 꿈인가……" 대답하며 흘긋, 곁눈질로 쳐다본 오소마츠는 소파에 기대어 잡지를 뒤적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생각들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었다. 팔락,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무심했다.







 그날도 쵸로마츠는 반쯤 잠에서 깨어 있었다.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형제들의 숨소리만이 나직하게 방 안을 메웠다. 어두운 밤이었다. 내일 비가 온다더니 달이 뜨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어둠 속에 짓눌려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이제는 꿈이라도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다. 갑작스레, 눈가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시선보다 훨씬 명백하고 두터웠다. 꿈이라고 착각할래야 착각할 수가 없는 감각이었다. 눈 아래의 뼈 부분을 매만지다가 눈꺼풀을 쓰다듬는 손길. 손. 그것은 손이었다.

 더 이상 자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쵸로마츠는 어렵게 눈을 들어올렸다. 마치 녹슨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것처럼 눈꺼풀에서 삐걱삐걱하고 메마른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빛 없이 캄캄해서 잠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알아볼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여섯이 같은 얼굴이었다. 그것은 거울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쵸로마츠는 그 얼굴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한참만에 그는 그 사람이 정말로 오소마츠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똑같은 표정을 짓는 일은 없다.


"깼어?"

"……뭐해?"


 목이 깔깔했다. 지나치게 원론적인 질문이어서 말해놓고도 기묘했다. 오소마츠가 턱을 괸 채로 웃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 어딘가쯤에 닿아 있던 손이 떨어졌다. "네 얼굴을 보고 있지." 대답 역시 단순했다. 그 말투는 조금 경쾌한 것도 같았다. 너무 단순해서 쵸로마츠는 이것 역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계속……" 그가 다시금 행간을 명확히 하려고 입을 열자마자, 뒷말을 먼저 읽어낸 마냥 대답이 돌아왔다. "응, 계속."


"……대체 왜?"


 창밖으로 차가 한 대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천천히 방을 훑고는 사라졌다. 순간 오소마츠의 이목구비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 표정은, 뭐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웃는 것도 같았고, 무표정한 것도 같았다. 스무 해 넘게 보아온 얼굴이 낯설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쵸로마츠는 왠지 무서워졌다. 무엇이 무서운지도 모르면서 그랬다.


"글쎄? 생각해보는 게 어때?"


 오소마츠가 그렇게 되물었다. 깜깜했다.







 마법처럼 그대로 다시 잠에 들어버렸기 때문에 그 뒤의 기억은 없다. 쵸로마츠는 왠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생각은 계속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하지만 아무리 고심해도 좀처럼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돌부리에 걸린 물살처럼 계속해서 생각이 턱턱 막혔고 어떤 결론도 내리기가 어려웠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도 같은데, 그때의 그 표정을 되새기다보면 무얼 놓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사람의 자는 얼굴을 계속 쳐다본다는 건, 대체 뭘까?"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파칭코에 간다고 몇 분 전에 집을 나갔고 방에는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있었다. 이치마츠는 그 주제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어디서 데려온지 모를 고양이 한 마리에게 공을 굴려주며 쵸로마츠의 말을 못 들은 체 하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 되물은 것은 토도마츠였다. "뭐야, 무슨 얘기야?" "어, 아니, 소설책 얘기." "로맨스 소설도 읽어? 신기하네." 쵸로마츠는 덜컥, 들고 있던 책을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책의 페이지가 제멋대로 넘어간다. "……뭐? 왜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해?" "그야 그렇잖아~ 남의 자는 얼굴을 쳐다본다니, 사랑이네." "뭐어? 아니, 절대 아냐." 절대로…… 말을 끝맺지 못한 것은 불쑥 그 얼굴이 또 떠올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뱃속이 덜걱거렸다. 마치 모난 돌을 삼킨 것 같았다.


"뭐야 왜 물은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소설인데?"


 토도마츠가 볼멘 소리로 물었다. 쵸로마츠는 자신도 모르게 배를 움켜쥐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대답은 한참 후에 나왔다.







 해가 빠르게 지고 있었다. 낮이 짧아지는 계절이었다. 쵸로마츠는 어쩐지 그대로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 들러서 몇 십 분을 어슬렁어슬렁 잡지와 음료수를 고르다가, 아르바이트 생의 눈치가 보여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을 때쯤 계산을 했다. 온장고에 넣어두었던 커피는 뜨거웠다. 주머니 속에 넣어두자 손끝이 따뜻해진다. 어둑한 길목마다 가로등이 하나 둘 씩 불을 밝히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세 번째 골목에서 오소마츠를 마주쳤다.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할지 몰라서 잠시 망설이다가 불쑥 커피를 내밀며 물었다.


"좀 땄어?"

"아아니, 아ㅡ 중간까지는 잘 되더니, 나중가서 다 잃었어. 나 돈 좀 빌려주라, 쵸로마츠."

"안 갚을 거잖아……"


 오소마츠가 커피를 받아들며 말했다. "미지근하네?" "좀 걸었더니 그래." "왜 걷고 있었어? 이런 시간에, 혼자." 발걸음이 무심결에 우뚝 멈췄다. 오소마츠가 두어 걸음 앞서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등 뒤로 한 줌 남아 있던 노을이 깜빡, 어두워졌다. 시간이 다른 시간으로 옮겨가는 때에는 이상하게도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나한테 할 말 없어?" 오소마츠의 대답은 한없이 가볍다. "할 말이 있는 건 너겠지."


"……토도마츠가 그런 건 사랑이라고 말하더라."


 최대한 돌려서 말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오소마츠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호한, 웃는 것 같은, 아닌 것도 같은 표정. 그제야 그 표정이 왜 낯설었는지를 알았다. 그것은 형제를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오소마츠가 성큼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행동은 언제나 쵸로마츠의 생각보다 빠르다. 손목이 잡히고 나서야 소스라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밀어내려면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오소마츠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말했다. 그 다음에 닿은 것은 입술이었다. 입을 다물기도 전에 이빨이 부딪혔다. 아프다, 눈을 찡그리자 상처를 핥는 것처럼 혀가 앞니 뒤쪽에 닿는다. 아, 정말로 이상한 느낌이다.


 몇 초, 혹은 몇 분이 지났는 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입이 떨어지자마자 쵸로마츠는 크게 숨을 뱉어냈다. 한참 동안 숨을 참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져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여전히 손목이 잡힌 채였다. 쵸로마츠는 담벼락에 반대쪽 손을 짚다 말고, 뒤늦게 여기가 집 앞 골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쑥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지금 길에서 뭐하는 거야?"

"앗, 길가가 아니면 괜찮고?"


 "그런 얘기 아니거든?" 입을 맞댄 것이 무색하게도 언제나의 회화였다. 오소마츠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그는 생각보다 쉽게 쵸로마츠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손바닥이 닿았던 곳이 몹시 간지러워서, 쵸로마츠는 손목 안쪽을 몰래 긁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