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인
로그 정리. 지구 종말을 앞둔 연극부!
트커에서 글 이렇게 많이 써본 건 처음이라 단문어택 연습하는 느낌이었음
" 할 말 없으면 갈 거야. "
이름 정우인
학년 3
과 문예창작
신장/체형 175cm/마름
생일 11월 7일
캐릭터 설정
얼굴 자체는 유순하게 생긴 편이나 표정이 뚱해서 인상이 애매하다. 희다기보다는 창백해서 혈색이 없는 낯빛. 짧고 단호하게 말하는 편.
전체적으로 병약하다. 별명이 문창과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체력도 약하고 악력도 약하고 잔병치레도 잦고 빈혈과 기립성저혈압으로 대표되는 가지각색의 지병을 가지고 있음. 덕분에 종종 학교를 빠지고, 가끔 갑자기 코피가 터지거나 일어나다가 쓰러지거나…… 한다. 옆에서는 놀라는데 본인은 익숙해서 잘 안 놀란다.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 밖에 나갈 때는 꼴사나울 정도로 껴입고 다닌다. 초봄과 초가을에도 목도리를 한다. 환절기 때마다 감기를 달고 산다.
당이 떨어지면 큰일 나기 때문에 항상 사탕이나 껌 초콜릿 같은 것을 자질구레하게 들고 다닌다. 최근에 좋아하는 것은 딸기맛 포키.
전공은 소설보다는 시. 외부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경험이 몇 번 있다. 부지런히 글을 쓰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는 예쁨받는 편.
동아리 내 포지션
후배들에게는 까탈스럽고 대하기 어려운 선배.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무언가를 할 때가 되면 갑자기 잔소리가 많아진다. 사소한 것까지 그냥 넘어가지를 않기 때문에 어딘가 꼬장꼬장한 이미지. 한마디로 잔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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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19
캐릭터 설정
말수가 적고 얌전해서 정적인 이미지이나 알고 보면 예민한 성격. 기본적으로 네거티브하고, 호보다 불호가 더 강하다. 짜증이나 성을 잘 내서 까탈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경우는 별로 없음. 항상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성격이 대범하지를 못하다.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덮어두고 넘어가는 것을 잘 하질 못한다. 한마디로 요령이 별로 없다. 본인도 스스로의 그런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살갑다거나 정이 많은 성격은 아니지만, 맺고 끊는 것을 잘 못해서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한 번 친해진 사람을 쉽게 내치지도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친해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아니다. 안 그래 보여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신경을 많이 쓴다. 짜증을 내다가도 상대가 저어하는 것 같으면 슬쩍 눈치를 보거나, 남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부분에서 골머리를 썩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의외로 감상적인 편이나 그런 면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오래 전부터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았다. 부모가 둘 다 자신의 일이 중요하고 자기만 아는 사람들인지라 철이 일찍 들었으나 대신 성격을 좀 버렸다……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혼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 작년 말. 그 후에 누구를 따라갈지는 네가 정하라는 말에, 참 지긋지긋하고 싫은 기분을 느끼며 누구도 따라가지 않고 양쪽에서 돈을 받아서 혼자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가야지, 하고 생각 중.
입부 계기
입학 당시 <소년 B가 사는 집>이라는 연극을 보고 인상에 남아, 연극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친구와 함께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입부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한 번 시작한 일을 스스로는 잘 그만두지 못하는 성격 때문.(같이 입부한 친구는 진작에 그만뒀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정다민/1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다 보면 곧잘 말이 길어진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우인은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책장에서 흰 색 표지의 얇은 책을 꺼내들었다. 매끈한 재질의 표지가 손에 쉽게 달라붙는다.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장미를 좋아한다든가 파란색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말들과는 달리 어떤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긴 머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긴 머리를 가지고 목소리가 상냥한 옆반의 A를 좋아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 같다. 책상에 걸터 앉듯이 기대어 책장을 가볍게 넘겨 보았다. 공부를 하느라 곳곳에 붙여 놓은 색색깔의 포스트잇들을 하나씩 뗐다. 이런 건 보이면 부끄러우니까…… 책장을 휙휙 넘기면서 포스트잇을 떼다가 서평 바로 앞, 가장 마지막에 실린 시를 읽었다.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왠지 이런 구절을 좋아할 것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포스트잇들 중 파란색 인덱스를 그 페이지에 붙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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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에 우인은 부실에서 어렵지 않게 정민을 찾았다. 수업이 끝난 직후의 동아리실에는 사람이 적었다. 그는 넓은 테이블 앞에 가만히 혼자 앉아 있는 정민에게 뭔가를 말하는 대신, 다짜고짜 책을 내밀었다. 정민의 옅은 푸른색 눈동자가 아래에서 위로 느릿하게 올라왔다. 언제나처럼 약간 졸린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빌려 달라며."
앞뒤 주어 없이 그렇게 말하자 정민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다가 곧 아아, 하고 입소리를 냈다. "네가 꼭이라고 말했으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덧붙였는데, 말하고 보니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런 그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정민은 선선하게 책을 받아들었다. 그의 손끝이 파란색 인덱스의 가장자리를 스치고 책의 모서리를 집어들었다. "고마워. 친절하구나……" 그 말에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친구한테 물건 빌려주는 게 그렇게 친절한 일인가?"
정민이 그를 쳐다보았다. 우인은 엉겁결에 말을 흐렸다.
"네가 친구하자며……"
어쩐지 두 배로 부끄러워졌다.
*황인찬-무화과숲
함이슬/1
좋고 싫음 이전에 주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부모 자식 관계라는 것이 대체로 그러했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방이나 난방이 돌아가지 않는 바닥, 열어두지 않은 커튼이나 시커멓게 시들어 빠진 화분 같은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해졌는데 그것도 중학교 1학년 때까지였다. 우인은 어떤 기대를 버리는 것이 빨랐다. 그의 두 살 어린 여동생은 그보다 한참 늦되었다. 그녀가 기대와 실망을 엇갈려서 반복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아주 어릴 때의 스스로가 떠올랐기 때문에, 우인은 동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 중에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딱 그 무렵부터였다. 그는 무언가를 쓰는 행위에 쉽게 빠져들었다. 바깥에 중요한 것이 생기자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많이 쓸 때는 하루만에 공책 한 권을 다 채워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네 글은 너한테 천착하는구나." 그렇게 말한 것은 중학교 때의 국어선생님이었구나. 문장은 좋지만 서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 "시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시 담당 선생님은 그렇게 권했다. 그녀는 시집을 한 번 읽어보라며 박준을 추천했는데, 순전히 그가 몸이 안 좋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별 다른 기대 없이 서점에 가서 갈색 표지의 책을 집어들었다. 책장을 넘겨가며 가볍게 훑는데 어떤 문장을 발견했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의 화자는 언제나 자기자신이었으므로.
"싫어? 그런 관계인 게?"
그래서 결국 그 질문에는 어떤 대답을 찾아야하는지 아리송해졌다. 우인은 저도 모르게 손톱으로 손바닥 안쪽을 긁으면서 잠시 생각했다.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손톱의 날카로운 부분이 손금을 스쳐서 상채기가 나고 나서야 우인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슬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뜸을 들인다는 것은 행간을 점점 더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그다지 원치 않는 결과였다.
"그게 싫다기보다는,"
급하게 입을 열자 말은 느끼는 그대로 흘러나왔다.
"아예 타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싫어."
……조금 완곡하게 말하는 것이 나았으려나. 이슬의 표정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준-문병
최남이/1
"……이게 삽소리로 들리냐? 개새끼야."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이상하게도 중학생 때의 기억이었다. 늦가을이었나, 그랬는데, 차게 식은 부엌 바닥이 맨발에 달라붙어와서 발이 시리다는 생각을 했었고, 문지방을 밟고 서서 한참동안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저기, 하고 운을 뗀 것은 개수대의 물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가 않았다. 이내 그 소리가 멎었다. 그는 억양 없이 빠르게 말했다. "나 하광예고에 원서 쓸 거야." 허락을 구하는 것도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닌, 정해진 결론으로만 수렴하는 말투였다. 엄마가 눈만 돌려 흘긋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 허락을 구하는 것도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대답 역시 그런 것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한 집에 살고 있으면 관심이 있든 없든 서로에 대해 조금쯤은 알게 되기 때문에, 그녀는 이따금씩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상패나 메모 쪼가리들을 보면서 그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는 일이 없는 것이 그녀다웠다.
우인은 소리 없이 문지방에서 내려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발바닥으로 다른 쪽 발목을 비비면서,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우인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수를 했다는 느낌도 아니고, 욕을 들어서 화가 난 것도 아닌 그저 지극히 침착한 기분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말하자면 말실수를 한 것일테다. 사과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었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러고 싶지 않은지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떤 것들은 잘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으로 생각될 때가 있다. 남이는 오연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기 때문에 더 화가 나 보였다. 그 새파란 분노에 공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기분은 점점 더 멀어졌다. 우인은 시선을 약간 내려 발치를 쳐다보았다. 신발과 신발. 아스팔트 바닥. 말은 생각보다 먼저 흘러나왔다.
"부럽네,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비꼬거나 농담을 하는 것도 아닌, 덤덤한 말투였다.
장혜리/1
나한테 의외성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나, 아마 오영영인가, 그랬을텐데. 우인은 대형서점의 시집 코너 앞에 서서 그렇게 생각했다. 여름의 끝무렵이었다. 계절을 쉬이 보내지 않겠다는 듯 더위는 끈덕졌고 서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찬 기운과 더운 기운이 마구잡이로 섞여 유리문에 김이 서리는 것이 느껴졌다. 베스트셀러와 장르소설 취미 여행 서적을 지나 제일 안쪽에 있는 시집 코너까지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갈색의 책장에 색색의 얇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습은 높이를 맞춰 자른 정원수나 키가 같은 형제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에어컨이 바로 머리 위에 있어서 조금 춥다는 생각을 하며, 신간부터 하나씩 꺼내 읽기 시작했다.
키가 크고 머리가 검은 후배는 남한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듯 종종 먹을 것이나 입을 것 같은 것을 동아리 사람들에게 선물하고는 했다. 그런, 살가운 행동이 기껍고 자연스러운 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저를 생각하면서 선물해준 거면 다 좋아요. 그런 말은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생각,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선물이라는 것은 결국 다 그렇다. 예쁘고 살가운 게 좋을까. 표지는 문학동네가 제일 예쁘지…… 딸기 우유 색의 표지가 손끝에 걸렸다.
함께 놀아요. 보리수꽃차 나눠 마시고 어리광 피우기 놀이해요 나만의 부티크 갖고 싶고, 여섯 배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자꾸 멍이 들죠. 난 유일의 목소리를 가졌고 비밀이 많아! 외쳐보지만 행복해지진 않아요, 걸스카우트 매듭을 배웠는데 제대로 묶는 게 하나도 없죠 어리광 좋아해요 사랑 얘기만 하고 세상을 몰라요*
이렇게까지 작위적인 건 아마도 시의 자의식이다. 세상에 예쁘기만 한 것은 없겠지. 그 애도 아마 그럴 것이다. 플루트는 계속 하고 있는 걸까…… 책을 들고 계산대로 다가가며 주말인데 서점에 사람이 적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사고 읽는 것은 멸망을 앞두고서는 너무나 수고로운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고민을 하며 아무도 없는 계산대에 서서 지갑을 꺼냈다.
서점을 나서자 햇빛이 이마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책의 표지를 찍었다. 자꾸만 손이 흔들려서 몇 번 더 찍었다. 문 앞에 서 있는데도 비키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거, 표지 예쁘지 않아?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박상수-닌나난나
함이슬/2
말에도 진폭이 있다고 가끔씩 생각하는데, 그 질문은 진폭이 깊고 넓었다. 우인은 문득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렸다. 손바닥 가운데가 얼얼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질문에 대한 선택지는 사지선다형이 아니었으므로 대답은 여러 가지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 깨진 컵과 빈 식탁 문지방을 넘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과 새카맣게 마른 화분 불이 꺼진 부엌과 인적이 없는 버스 정류장 가만히 앉아서 몇 대의 버스를 지나쳐 보내는 일이나 우울증의 병력은 유전이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을 때 인기척이 없는 문 앞에 서 있는 일 계절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열병과 한바탕 앓아누운 침대 머리맡에서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는 시구를 떠올리는 것…… 그런 일들은 너무나 사소하고 사적이어서 어떤 방식으로도 에둘러 표현할 수가 없었다. 줄글 사이에는 숨길 수 있어도 말과 말 사이에는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시의 다음 구절이,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하고 끝나는 것을 떠올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난 의외로 외로움을 타나 봐."
말로 이뤄놓고 보니 어린아이 같은 대답이라 우인은 부러 큰 동작으로 의자에 기대었다. 창문 밖에서는 길어진 낮과 밤이 천천히 반복되고 있었고 세상은 어쩌면 멸망하는 중이었으므로 그의 사소한 대답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는 마치 피곤한 사람처럼 눈가를 손바닥으로 성마르게 문지르며 느릿느릿 단어를 골랐다.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이 들어서."
손금을 따라 눈꺼풀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남에게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대답을 하는 스스로의 목소리가 타인의 것처럼 조금 낯설게 들렸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로 하려 하지 않았던 일들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동아리 계속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몰라. 집에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런 거였나…… 말하면서 스스로도 납득했다. 말이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면서.
*박준-꾀병
방국봉/1
마지막을 앞둔 사람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았다. 태연하거나, 태연하지 않거나.
국봉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꺼낸 초콜릿들 중 하나를 집어들며 우인은 스스로 태연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 날 주머니 속에 오래 넣어둔 초콜릿은 단단하고 차가웠다. 포장지를 바로 뜯어 잇새로 밀어넣으면서, "이렇게 물질적인 걸 나눠달라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하는 괜한 얘기를 덧붙였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항상 단 걸 들고다녔지만 단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중학생 때 당이 떨어져서 학교에서 쓰러진 이후로 생긴 습관 같은 것이었는데, 습관이라는 건 이상해서, 단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줄곧 생각해왔는데도 어느 새 편의점의 매대 앞에 서서 좋아하는 사탕이나 초콜릿을 집어드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이라는 것도 결국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믿지 않기에는 너무 목전에 왔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된 생각들이, 마지막을 의식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생각들이 있어서 자꾸만 기분은 처졌고 덩달아 몸까지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인은 단단해진 초콜릿이 천천히 녹아 혀 아래에 달라붙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국봉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입고 있던 패딩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하나 더 먹어도 되는데. 기분은 좋아졌어요?"
그렇게 물어보는 목소리는 태연하다. 부러 노력하는 기색이나 의연함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
말꼬리를 흐리면서 대답했다. 우인은 왠지 예전부터 이런 것에는 이길 수가 없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것. 태연한 것. 그런 사람들. 스스로가 가지지 못한 소양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손을 좀 더 깊숙히 밀어넣자 주머니 안쪽에 있던 사탕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포장지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딸기 맛과 레몬 맛이었던 것 같다.
"……이거 너 줄게."
너 머리색이랑 닮았으니깐…… 그렇게 말하며 노란색 포장지의 사탕을 꺼내 여전히 펼쳐져 있는 국봉의 손바닥 가운데에 올려주었다.
1
쨍그랑
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장자리에 토끼 무늬가 있는 분홍색 유리잔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주 예전의 기억이다. 그는 깨진 파편 사이로 노란색 내용물이 울컥 쏟아져 나와 넘쳐흐르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을 안고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시선이 식탁 모서리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려 바닥으로 내려와 깨진 컵으로 향하던 그 소리 없는 동선을 기억한다.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담기라도 하듯 바닥을 쓸던 시선이 이내 다시 위로 올라왔다.
"이제는 정말 안 되겠어."
그 말의 억양은 독특했는데, 이제는, 하고 길게 내뱉다가 한 번 숨을 참고 나머지는 빠르게 뱉어내는 말투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생을 의자에 내려두고 문, 그러니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우인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녀는 맨발이었다.
그 뒤에 벌어진 것들은 전부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맨발로 동네를 정처없이 걸어다니던 여자를 붙잡은 것은 경찰이었고, 그때 그녀의 발은 이미 피투성이었고, 그녀는 병원에 가서 파상풍 치료와 함께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마치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풍선처럼 그와 그의 동생은 영문을 모른 채로 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무언가가 분명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그를 낳기 전 그만뒀던 일을 다시 시작했고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고…… 아…… 그리고 어땠더라?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포기했더라.
그들이 나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었지. 한때는 화가 났던 것 같기도 하고 한때는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한때는 쓸쓸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전부 아리송하다. 불이 꺼진 방과 계절이 지나도 여전히 걸려 있는 여름 커튼,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거실과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을 때 들을 수 있는 창밖의 바람 소리 같은 것들에 익숙해지는 것은 쉬웠다.
……쉬웠나?
쉬웠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은……
2
손바닥이 가장자리부터 안쪽까지 차가웠다.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이 손바닥 안쪽으로 굽어들 때마다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했고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해서,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옹송그리고 무릎에 이마를 댔다. 긴장하면 안되는데. 모의 면접을 볼 때는 전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가 1지망이고, 수상 실적도 있고, 아마 붙을 확률은 제일 높을 테니까…… 이러는 와중에도 낮과 밤은 점점 고무줄처럼 길어지고 있고, 멸망이 목전에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바보 같은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문득, 관자놀이가 당기듯이 머리가 아프고, 생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수시로 붙어야 하는데, 나는 정시까지 가면 답이 없는데…… 붙어야 하는데……
그래야지만 그 사람들과 타인이 될 수 있는데.
3
발을 바닥에 딛고 의자에서 몸을 떼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물건을 떨어트리기 직전에 아, 떨어지겠구나, 하고 아는 것. 그런 느낌.
고개를 들자 형광등 불빛이 눈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야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기시감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언제였지.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 오래 달리기를 하다가 쓰러졌을 때. 그때 꼭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식은땀이 나다가, 발끝부터 무너지는 것처럼, 이렇게, 몸이,
바닥으로……
4
그 뒤 며칠 동안 열이 났다.
올 한해 겪지 않은 감기를 한꺼번에 겪기라도 하듯 열병이 길었다. 침대에 누워 열 기운에 몽롱한 가운데 자다 깨다 하고 있으면 낮과 밤이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그럭저럭 열이 떨어졌지만 그 후에도 그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데도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기분으로 누워서 불 꺼진 천장에 창틀 그림자가 어리는 것을 쳐다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들은 대체로 그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돌 듯 생각이 생각을 부르고 또 생각이 부른다. 그는 졸리지도 않은데 눈을 감았다.
5
신발 밑창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았다. 지난 여름에 왔을 때도 신발에 모래가 들어갔었다. 그런 성가심을 감수하고서도 바다에 오는 이유는 뭘까. 수인은 깊은 생각이 있어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얄팍한 위로에 기대어서 무언가를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은, 여기가 바다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우인은 신발을 벗어서 모래를 털어내는 대신 말을 털어냈다.
"내가 왜 대학 가는 데 집착하는 줄 알아?"
왜냐고 거듭 묻기도 전에 뒷말이 먼저 따라나왔다.
"집에서 나가고 싶어서. 우리 부모 사람한테 정말 관심이 없거든. 근데……"
뒤꿈치에서 까끌거리는 느낌이 났다. 그는 고집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혼한다더라. 나 고등학교 졸업하면."
말로 이루어놓고 나니 문득 목 아래가 뜨뜻미지근해졌다. 어두워서 수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빠르게 말했다.
"그러고서 나보고 둘 중 한 명 정해서 따라오래. 이 사람들 미쳤나? 싶더라. 정말로 내가 둘 중 한 명을 고를 거라 생각한 거야?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왜 결국 자식은 부모한테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야. 왜 나는 매번 나한테 관심도 없는 사람들 사정에 휘둘려야하는 거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그래서…… 난 혼자 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뒷말은 쉽게 침묵에 묻힌다. 입을 다물자 파도 소리가 단숨에 귀를 덮쳐 오듯 크게 들렸다.
6
문득 시선이 바다 쪽으로 향한다. 어두워서 윤곽이 불분명한 시야에도 새까만 물살이 발치까지 밀려왔다가 밀려나가는 것은 잘 보였다. 밤이…… 몇 시간 째지? 백사장 뒤편으로 도로를 등지고 있는데도 지나가는 차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헤드라이트의 불빛도 등대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늦가을의 바닷가는 정말로 어둡고 쓸쓸하고 황량해서,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마치 그들이 앞둔 것은 온통 그런 것들뿐이라는 듯이. 새까만 수평선과 젖은 모래알과 금방이라도 빨려들어갈 것 같은 어둠뿐이라는 듯이.
"……아니."
그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린왕자
일시적인 존재가 뭐예요? 말끝에서 문득, 침묵. 우인은 자신이 대사를 까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젠장. 그가 속으로 뇌까렸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의식이 강해서 주목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 다른 하나는 그래서 오히려 주목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우인은 후자였다. 그래서 내가 하기 싫다고 그랬는데…… 키 작고 똘망똘망한 1학년의 부탁은 생각보다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벽에 머리를 박은 채 대본을 손에 쥐고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다면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않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지.
그래서 무슨 대사였더라.
일시적인 존재? 어떤 일시적인 존재. 일시적이라는 말은 어떤 예언 같다. 명백한 끝을 암시하는…… 그래…… 나는 이 부분을 처음 읽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멸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지.
푸른 하늘 랩소디
조명 기계 옆에 서서 우인은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막은 이제 막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매화가 대사를 말하는 것에 맞춰 천천히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는 그 마음들의 근원을 알고 있습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무척이나… 선명하게…… 여기서 조명은 천천히 꺼져야 한다. 버튼을 내리자 빛은 서서히 옅어지는가 싶더니, 파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 전부터 기계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끝이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빛이 흔들리자 마치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아서, 우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리고 그는 저도 모르게 비틀거리면서 무너지듯이 기계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눈가가 온통 축축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끝이었다.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고, 무언가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로 끝이었다. 가능성이나 내일이나 다음이나 기대 같은 단어들이 철저하게 무용해지는 순간이 오고 있다. 그는 이 다음을 생각하는 대신, 아주 오래 전 읽었던 구절을 떠올렸다.
미래의 우리는
이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암전. 그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신해욱-금자의 미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