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소우타마/ 열과 빛
요츠바 타마키에게 오오사카 소고에 대한 것을 묻는다면, 부드럽고 매끈한 천으로 감싼 압정 같은 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잘 다림질 되어 구김이 없어 보이고, 만지면 감촉이 좋을 것 같고, 값비쌀 것 같고,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몇 번 그 천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안에 든 것을 꺼내 본 이후로는 예전만큼 그가 불투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근본적으로 소고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옆에서 아무리 말로 표현해달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졸라도 쉬이 변하지 않는 근본에 가까운 성질이어서,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감내하며 살아가야하는 것이구나…… 하고 이상스레 생각하게 될 때가 있었다.
"아."
그만큼 타마키는 그의 기척에 기민해지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었다.
작게 입소리를 낸 소고가 갑작스럽게 동작을 멈췄다. 몸을 돌려 쳐다보자 그는 마치 바닥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눈을 내리깔고 시선으로 발치를 훑고 있었다. 리허설을 하는 와중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앞머리 사이로 슬쩍 보인 그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왜 그래?" 타마키가 묻자, 소고가 반 박자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그, 아주 짧은 찰나. 소고는 짐짓 침착한 얼굴로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 찰나를 알아차리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의 산물이라면 산물이었다. 타마키는 뭔데, 무슨 일이야, 하고 그에게 따져물으려고 했으나, "다 됐나요?" 하고 물어보는 스태프의 높은 말소리가 그들 사이에 날아들었다. "네, 리허설은 이정도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소고가 재빨리 대답하고는 타마키의 옆에 반듯하게 섰다. 타마키는 자신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는 그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집요한 시선을 느꼈을 텐데도 한 번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 그의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러나 그가 그 의혹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기도 전에 간주가 시작되었다. 녹화 방송이었으나 촬영을 지연시켜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이제 타마키도 알았다.
음악이 들려오자 몇 번이고 연습해서 익숙해진 동작을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MEZZO"의 안무는 항상 그다지 격렬하지 않았다. 팔을 뻗었다가 내리고, 천천히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문득, 타마키는 그가 평소보다 조금 동작이 굼뜬 것을 알아차렸는데, 시선이 마주치고, 다시 가까워졌다가 엇갈려서 서로를 지나치는 순간, 소고의 목덜미에 배어나온 땀방울 같은 것이 얼핏 보였고, 눈으로 내내 그를 쫓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움직이자 4분 남짓한 곡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끝나는 반주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타마키는 몸을 긴장시키며 자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소고를 맹렬하게 쳐다보았다.
"네, OK입니다!"
스태프가 명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수고하셨, 습, 아?"
소고는 언제나처럼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두어 걸음만에 그에게 다가온 타마키가 어떤 예고도 없이, 정말로 갑작스럽게 몸을 숙이더니 그를 쌀포대처럼 들쳐업었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던 탓에 소고는 뇌의 처리속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을 느꼈다. 배가 눌리고 몸이 공중에 뜨는 감각이 머리를 더욱 느리게 돌아가게 했다. "저기, 저기 타마키 군? 타마키 군? 이거 뭐하는 거야?" 그가 더듬더듬 항의했으나 타마키는 대답도 하지 않고 휙 몸을 돌렸다.
"반쨩, 우리 다음 스케쥴 있어?"
"어? 아니, 없을 텐데."
"그럼 숙소로 돌아가도 되는 거지?"
그럴…… 걸, 하는 대답을 듣자마자 쏜살같이 촬영장 출구로 튀어나가는 타마키의 뒷모습은 사뭇 비장하기까지했다. 이게 뭐하는 거냐니까? 저기, 저기 타마키 군! 듣고 있어? 타마키 군! 소고의 목소리가 멀어져가며 복도를 울렸다. 한참 잘 나가는 듀엣의 희귀한 모습을 감상하느라 넋이 나간 스태프들에게 허둥지둥 인사를 건네며, 반리는 그들을 쫓아 황급하게 촬영장을 나섰다.
노도와 같은 기세로 주차장까지 내려와 구겨지듯이 차에 올라탄 후, 소고는 이번에야말로 화를 내야할 타이밍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옆에 앉아 왼쪽 발목을 잡고 휙 무릎 위에 올려두는 타마키를 보며 그 반대가 되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했다. 타마키가 바짓단을 제멋대로 구기듯이 걷어올려 그의 발목을 드러냈다. 발목은 한 눈에 보기에도 복사뼈 부근이 붉게 달아올라 퉁퉁 부어 있었다. 타마키가 바짓단을 올려 잡은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소고는 할 말이 없어져서 입을 다물었다. 타마키가 운전석에 올라탄 반리에게 물었다.
"반쨩, 뭔가 시원한 거 있어? 얼음이라든가."
"얼음은 없고 방금 산 스포츠드링크가 있긴 한데."
"그럼 그거라도 줘."
차가운 음료수 병이 발목에 눌리듯이 닿았다. 반사적으로 아, 하는 신음이 튀어나왔다. "어디 다쳤어?" 반리가 후진을 하며 뒤늦게 물었다. 이제는 더 숨길 여력도 없어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아까 리허설 할 때, 그, 무대의 단이 조금 높아서요. 잘못 디뎌서 발을 좀 삐었어요."
"이게 조금이야? 엄청 부었잖아!"
역시나 타마키는 화를 냈다. 화를 내면서도 스포츠드링크를 가져다대주는 손은 떨어지지 않는다. 몇 마디 더 쏘아붙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대신 입을 다물고 부루퉁한 얼굴을 한다. 좋지 않은 패턴이었다. 차라리 솔직하게 화를 내주는 쪽이 조금 더 달래기가 쉬울 텐데. 소고는 그가 어느 정도로 화가 나 있는지 속으로 가늠해보았다. 이런 식으로 화를 낼 때의 그는 성가시고 다루기가 어렵다. 어떤 말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와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걱정해주는 거겠지. 타마키는 어느새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이마며 콧대의 윤곽이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지나갈 때마다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소고의 발목은 여전히 그의 다리 위에 올라가 있는 채였다. 화를 내는 것이 다정함과 연결되어 있다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소고는 멀거니 시선으로 그 옆얼굴의 자취를 쫓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내리는 것 역시 타마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쌀포대처럼 들쳐 메지는 경험을 살면서 두 번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리쿠와 미츠키가 놀라 방까지 쫓아 들어오는 것을 보니 부끄럽기까지 했다. "뭔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묻는 리쿠에게는 좀 전에 반리에게 했던 설명을 되풀이해줬다. 미츠키가 눈치 빠르게 얼음 주머니를 만들어서 가져왔다. 얼음이 차가워서 뭔가 안심이 됐다.
괜찮아? 아프겠다. 엄청 부었네. 내일 병원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뭔가 더 필요한 거 있어? 일어나지 말고. 그런 다정한 말들이 오가고, 리쿠와 미츠키가 방을 나서고 나서도 타마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괜시리 눈치가 보여 손에 든 얼음 주머니를 만지작거리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타마키였다. 여전히 좀 볼멘 소리였다.
"아프지 않았어?"
그의 말은 언제나 부속품이 하나 둘쯤 빠진 듯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언제?" "아까, 춤출 때 말야." "아아."
"일이니까…… 참아야 할 것 같아서. 리허설 다 했는데 갑자기 못하겠어요, 하는 것도 안될 일이고."
"이상해, 그런 거. 소쨩 표정도 변하지 않았었구."
"그야 참는 건 익숙하니까."
"익숙하면 아프지도 않아?"
소고는 뒤늦게 타마키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스스로도 되짚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팠나? 아팠던가. 아팠던 걸까.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은 아직 교복을 입을 때의 기억이다. 중학생 때였던가, 언제 한 번 반에서 독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병증은 역시나 그를 피해가지 않았고, 살면서 그렇게나 열이 올랐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무지 학교에 나갈 수가 없어 침대에 누워, 이마에 물수건을 얹고 비몽사몽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누군가, 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였다.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이내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건강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구나.
목소리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한심하다든가, 안됐다든가 하는 말도 없이 딱 그 말만. 몽롱한 와중에도 그 말의 어조와, 칼로 도려낸 듯 떨어지는 말끝은 기억에 눌러 박은 듯이 남았다.
그 이후 집을 나올 때까지 오오사카 소고는 앓아누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아팠던 걸까?"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입밖에 내고서야 아차, 했다. 그 역시 모호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마키는 아랑곳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구. 소쨩, 자기가 아픈 것도 몰라?"
"으음……"
"소쨩은 바보네."
"아, 하하, 그럴지도."
침대 가장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타마키가 풀썩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머리카락이 목 언저리에 닿아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소고는 무심코 웃었다. 타마키가 무게를 싣듯 몸을 기울이며 웅얼거리는 소리로 거듭, 말했다.
"소쨩은 바보야."
그 목소리에 눌러담긴 짜증이나 걱정 같은 것이 문득, 사랑스러웠다.
"응, 그러게."
그가 웃음기 실린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