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웬




 습관이라는 것은 언제나 본인에게 속해있지만 타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로렌스는 오웬이 초조해지면 구둣굽으로 바닥을 차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앉을 때면 어깨를 옹송그려 구부정하게 앉는다던가, 멋쩍을 때면 콧잔등을 긁는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그와 마찬가지로 오웬도 그의 그러한 행동양식들을 천천히 익혀나갔다. 부러 알려고 하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것들은 봄날 창틀에 부드럽게 얽히는 나무 그림자처럼 맞물렸고 오웬은 종종 그런 것들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학교 안에 있는 도서관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역사 코너에는 과제라도 있는 날이 아닌 이상에야 사람이 적었고 바로 옆에 있는 너른 창문 덕에 아까울 정도로 볕이 잘 들었다. 둘다 말이 많은 성정은 아니었지만 느린 템포로 한 마디씩 주고받는 사담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별로 영양가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엊그제 같이 본 영화 얘기라던가 읽었던 책 얘기, 수업시간에 들었던 우스운 농담이나 종종 생각나곤 하는 꿈 얘기 같은 것들. 오웬은 그런 사소한 말들 사이에 자신의 얘기를 섞었다. "꿈에서 가끔씩 길을 보는데," 로렌스는 꽂혀있는 책들의 배열을 바르게 하면서도 그 말을 유심히 들었다. 약간 기울어진 각도의 고개가 가끔 흔들렸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 나올 것 같은 길은 아니거든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잘못 나 있는 뒷골목 같은 거요."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심상했다. 오웬은 하나씩 책을 꽂는 로렌스의 뒷통수 너머로 쨍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겨울의 한중간인데도 드물 정도로 하늘이 깨끗했다.



 "시멘트 자국에 기름때가 껴 있고 너무 좁고 어두워서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길인데, 그래서… 별로 가고 싶은 길은 아닌데, 그 길이 아니면 길이 없는 것 같이 느껴져서요."



 "그래서 기분이 별로예요." 마지막 책을 위쪽 선반에 꽂고 나서 로렌스는 고개를 돌렸고 오웬은 팔짱을 낀 채로 책장에 기대어 그를 쳐다보았다. 말이라는 것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 뱉어내고 나면 말한 만큼 가벼워진다. 오웬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나도 종종 꿈을 꿔." "무슨 꿈인데요?" 말의 끝머리에 곧장 묻자 그가 웃었다. "너는 몇 주만에 말해줬으면서 바로 말해달라고 하는 건 뭔가 불공평하지 않아?" 그 말에 오웬이 미간을 찌푸렸고 건방진 태도로 정강이를 아프지 않게 걷어차고 나서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13피트 아래에 묻혀있는 꿈." "그것 참 암울하네요." "형이 죽었을 때 딱 그만큼 땅을 팠었거든." 오웬은 문득 말을 잃었다. 말은 그 내용만큼 무겁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말 같지도 않았다. 그는 천천히 말을 골라냈다.



 "저번 달에 형이랑 밥 먹었다면서요."

 "형이 둘이거든. 해리, 크리스. 누나도 있어. 레이첼이라고."

 "형제가 많네요."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렇게 살갑지는 않아."



 감정의 표면만 훑는 것도 일종의 버릇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로가 필요한 것 같진 않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오웬은 그런 종류의 일에 서툴렀다. 그는 잠시 고민했고 이내 로렌스의 팔꿈치를 잡았다. 고개를 숙이자 자연스럽게 입술이 닿았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안경이 달각거리는 소리를 냈고 오웬은 반대편 손을 들어 안경을 밀어넘겼다. 키스는 별로 길지 않았다. 혀끝과 혀끝이 맞닿으며 성기게 얽혔다. 사람이 잘 나다니지 않는 구석 자리를 찾아든 것이 이런 것을 기대하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하면 거짓말일테다. "위로해주는 거야?"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는 어딘가 낮은 웃음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위로받는 거예요." 짧게 대답하고 나서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좀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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