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도이/ 빛나는 밤 20150710



* 너 나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츠도이 주의





 오래 이어진 임무가 좀처럼 끝나지를 않고 있었다.

 날에 스친 상처가 붕대 아래에서 욱신거렸다. 그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지금 상처가 덧나거나 곪는다면 곤란해질 것이다. 리키치는 피가 굳어 딱딱해진 붕대 위를 손으로 꾹 누르며 짧은 한숨을 뱉어냈다. 깊은 한숨은 내쉬면 안된다. 딱 그 깊이만큼 절망해버릴 수도 있었으므로. 통증을 다스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숨을 고르게 들이마시면서 눈을 감고 밤길을 걸어가는 상상을 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자신의 발자국만을 보며 걷는 일은 반복적이고 단순했다. 그 규칙적인 박자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무가 많은 길…… 그 길끝에서 그는 불빛을 본다. 얇은 미닫이문을 뚫고 비치는, 노랗고 희미한 빛.

 그는 눈을 떴다. 등을 기대고 있는 바위가 문득 차가웠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자꾸만 부풀어 헝클어졌다. 그는 손을 들어 눈앞으로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걷어내면서 앞을 보았다. 숲 속은 바다의 밑바닥처럼 푸르고 어두웠다. 낙엽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쓸려가며 시끄럽게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리키치는 한쪽 무릎을 세워 팔로 끌어안았다. 문득, 등 뒤에서 나뭇가지가 서걱서걱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꼭 인기척처럼 들렸다. 그는 쿠나이를 붕대를 두른 쪽 손에서 다른 손으로 바꿔쥐면서 기민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숲은 조용하고도 요란했다. 그는 바람이 멎을 때까지 오랫동안 어둠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허공을 노려다 본 후에야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손끝까지 빠듯하게 차올랐던 긴장이 풀리자 저절로 몸이 가라앉았다. 방심을 했다기보다는, 지친 기분이었다. 스르륵 얼굴을 팔에 기대자 피 냄새가 났다.


"갈까……."


 말은 머리를 거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넘쳤다. 입 밖에 내고 보니 바로 이 근방이라는 것이 새삼 기억났다. 몇 날 며칠을 쫓고, 쫓기고, 숨고, 도망쳐 다니느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깨닫고 나니 문득 손 안쪽이 간지러워졌다. 이런 꼴로 가면 놀라려나. 꽤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를 못했다. 손톱 아래에 새까맣게 낀 것이 흙먼지인지 굳은 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계절이 바뀌기 전이었으니, 이제는 예고 없이 찾아가기 뭣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임무 도중이었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가 아직 그의 뒤를 밟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그 혼자만이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지 말아야할 이유는 그렇게 수십 가지는 줄줄이 풀려나왔다. 줄줄 풀려나오는 족족 머리 한 구석으로 흘러가기만 해서 문제였다. 그는 이내 손바닥으로 세차게 얼굴을 문질렀다. 이미 마음이 기운 것을 외면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므로, 리키치는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치켜들자, 나무들의 꼭대기 위로 밤하늘이 어지러울 정도로 까마득했다.







 예상했던 대로 도이 한스케는 그를 보자마자 놀람과 경악 그 중간쯤에 있는 얼굴을 했다. 그것이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방문 탓인지 아니면 그 몰골 탓인지는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리키치는 두건을 풀어내며 간지러운 턱을 긁적였다. "꼴이 좀 그렇죠?" "아니까 다행이다." 객쩍은 물음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도이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지만, 그러다가 나온 말은 결국 단순한 것이었다. "일단은, 씻을래?"

 나무로 된 마루 위를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었다. 어린아이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었다. 반쯤 식은 물에 몸을 담그면서도 리키치는 뜨뜻하고 물컹한 무언가에 감싸여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좀 전까지는 그렇게 추운 곳에 있었는데. 김이 서린 천장의 나뭇결이 다른 세계의 그림인 것처럼 신기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넋을 놓았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어쩐지 그대로 잠이 들 것 같아 그는 눈을 부릅 뜬 채로 묵은 때를 벗겨냈다. 욕탕에서 나와 도이가 쓰는 방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욕실과 가장 멀리 있는 맨 안쪽 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미닫이문 너머로 배어나오는 불빛이 노랗고 희미했다. 리키치는 어쩐지 문밖에 서서 오래오래 그 불빛을 쳐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을 간신히 이겨내고 문을 열었을 때, 도이는 무언가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기척에 도이가 고개를 들었다. "방이 몇 개 없어서, 이불은 여기에 깔았어." 방이 좀 좁아도 어쩔 수가 없어. 도이가 나직하게 덧붙였다. "가릴 처지가 아닌 걸요." 리키치는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으며 대답했다. 도이는 들고 있던 두루마기를 좀 더 풀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임무 중이었던 거 아니야?" 왜 이곳에 왔느냐는 물음일 것이다. 대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리키치는 대답 대신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등잔의 기름이 거의 다 된 것인지 불빛이 자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도이의 얼굴선도 얕게 흔들렸다. 보고 싶었다는 말은 간결하고 쉬웠다. 하지만 그 말이 입천장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생각한 것을 말하기가 쉬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후, 도이가 문득 웃었다. 어느 새 도이는 몸을 돌려 그와 마주보고 있었다. "잠을 잘 못 잤지?" 리키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도이는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열두세 살 쯤에나 보았던…… 그런 얼굴. 그 얼굴을 지금 보고 있으니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간지러웠다. 그리고 말마따나 몹시 졸리웠다. 눈을 깜빡이는 것이 느려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먼저 자도 돼. 나는 이걸 마저 봐야해서……" 그렇게 말하며 도이는 등불을 비스듬히 옮겨 이부자리까지 빛이 닿지 않도록 했다. 리키치는 그 말을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그는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 정돈해놓은 이불 밑으로 파고들었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몸이 바닥 아래로 꺼질 것처럼 무거웠다.

 그대로 까무룩하게 잠들 줄 알았는데, 너무 졸리운 탓인지 되레 잠이 깊이 오지를 않았다. 그는 선잠이 든 상태로 종잇장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옷자락이 구겨지는 소리, 간간히 팔꿈치가 탁상에 닿는 소리.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꺼질 것처럼, 꺼지지 않을 것처럼. "선생님."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는 문밖에서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드르륵 이어졌다. "왜 그래, 쇼코." "무서운 꿈을 꿨어요……." 아이는 낮게 울음이 깔린 목소리로 칭얼대었다. 반쯤 잠에 취한 귓가에 목소리가 띄엄띄엄 고였다. 아이는 커다란 개에게 발을 물어뜯기는 꿈을 꿨다고 했다. 도이가 아이의 어린 손바닥을 주무르면서 어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물가물한 잠결에도 능숙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저도 무서운 꿈을 꿨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무슨 꿈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불 앞에 발을 내밀고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들었던 기억은 어렴풋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 그랬던 적도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아이는 얼마 후에 방을 나갔고, 도이는 문앞에 서서 아이를 내보냈다. 그는 탁상 앞으로 돌아오다 말고 문득 리키치를 내려다보았다. 리키치는 모로 누워 목 위까지 이불을 덮고 있었다. 몸을 수그리는 기척이 있더니, 도이의 손가락이 문득 그의 눈밑에 닿았다. 그제야 리키치는, 자신이 조금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꺼풀이 축축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울어본 것이 이미 몇 해 전 일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새에 눈물이 새고 있었다. 얼굴을 숨기고 싶었지만 몸은 생각을 가둬둔 물주머니처럼 꼼짝을 하지 않았다. 도이는 그의 눈가를 오래 훑지 않았다. 떨어진 손은 그의 관자놀이 부근에 닿았다. 그 손이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그의 옆머리를 토닥였다. 오래, 오래 토닥였다.









쓰다가 한 번 날렸더니 다시 쓴 문장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죽겠다♨ 잘 쓰는 것을 포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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