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를 그만둔 오이카와와 사귄다는 것은 여러 가지 비일상적인 행동을 동반했다. 예를 들자면 같이 밥을 먹다가 TV에서 배구 중계가 나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서 화면을 끄는 일. 아니면 이야기에서 흘러가듯 나온 소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넘기는 상대에 맞춰 자연스럽게 침묵하는 일. 그가 아직까지도 열다섯 살이었다면 그런 종류의 일정하지 못한 궤도를 불온하게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그는 스물다섯이었고 그동안 그는 오이카와라는 사람에게 많이 익숙해졌다. 모든 것을 직선으로 여기는 그 자신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오이카와의 안에는 여러가지 에둘러 가는 길이 존재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카게야마는 그 길이 어떤 식으로 뻗어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고 그저 오이카와의 안에 그러한 것들이 존재한다, 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인식한 정도였다. 이 정도도 십대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하겠다.
그들의 동거는 십여 년을 넘겨서 겪어온 관계와는 반대로 매우 평범하게 이루어졌다. 살던 집이 계약 기간이 끝나서 집을 옮겨야한다, 라는 카게야마의 말에 "그러면 나랑 같이 살래?" 라고 오이카와가 물었다. 집세가 반으로 줄어든다면 새 컴퓨터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덧붙였다. 카게야마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장만해놓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의 짐은 큰 가방 두어 개에 전부 들어갈 정도로 단출했다. 고작 몸 하나와 가방 두 개를 들고 그 집의 문턱을 넘는 일은 그러니까, 복사된 집 열쇠를 받아드는 일만큼이나 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날 밤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타자의 안색에 기민한 오이카와는 눈치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이카와가 배구를 그만둔지는 이제 3년쯤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바로였다.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카게야마는 모른다. 그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오이카와는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고 자신의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프로로 데뷔한 것도 꼭 그만큼 되었다. 카게야마의 삶에서 배구는 여전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를 빼놓자면 그랬다. 동그란 접시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딱 그 부분만이 배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이카와와 처음 엮이게 된 것이 배구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것이 별로 없었다. 대하는 태도가 다소 유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들에게는 유쾌하게 굴면서도 그에게는 심술맞았고 가끔 변덕스럽거나 못되게 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같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인생에서 배구가 없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상상이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 오이카와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 너머에 있었다.
그래서 카게야마는 TV를 다시 켜거나 대화의 서두를 다시 잡는 대신 그를 내버려두는 것을 선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었다. 입다 벗은 선수복이나 져지를 집에서 빠는 대신 번화가까지 내려가 코인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있으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도 올 때 세제 사와, 리필용으로, 하는 문자를 받으면 그 생각을 까무룩하게 까먹었다. 건조기에 돌린 빨랫감을 스포츠백 안에 대충 쑤셔넣고 마트에 들러서 세제와 몇 가지 빵을 사서 집에 가면 오이카와는 일상적인 얼굴로 그 곳에 있었다. 새로 산 컴퓨터로 남은 업무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카게야마는 그때마다 그것이 참 새삼스러웠다. 그가 처음 동경하게 된 오이카와는 배구를 하는 오이카와였는데, 그와 함께 사는 오이카와는 더 이상 배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삶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온전히 도려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그날도 그랬다. 카게야마가 집에 왔을 때 오이카와는 소파에 누워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신발을 벗으며 다녀왔습니다, 하고 버릇처럼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득, 오이카와가 읽고 있는 것이 스포츠 잡지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 한 그의 인터뷰가 실린 것이었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끝이 아릿했다. 카게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트렸다. 그는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로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오이카와가 바스락거리며 책장을 몇 번 넘겼다. 그가 풀썩 책을 덮고 몸을 돌릴 때까지 그 찰나가 아주 길었다.
"못 읽겠어."
그가 책을 바닥에 가볍게 던지고는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는 모로 누운 그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이카와는 딱히 들으라는 것도 아닌 것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 못 읽겠어." 카게야마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소파로 다가가자 오이카와가 한쪽 눈만 떠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게야마는 몸을 수그리고 앉아서 그와 눈을 맞췄다. "오이카와 선배." 그가 손가락으로 오이카와의 옆머리를 만졌다. 오이카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떨림이 멎었다. "사랑해요." 그렇게 말해도 대답은 없었지만 카게야마는 고개를 수그려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도려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2차도 아닌 것 같은 글...
개인적으로 오이카와는 배구를 그만두고 나서야 카게야마랑 온건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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