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 한스케는 가끔씩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키리마루는, 어릴 적부터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눈치가 빠르고 타인의 행간에 기민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태가 났다. 나란히 앉아 말린 빨래를 개고 있으면 도이의 시선은 자주 문간으로 가닿았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거센 바람이 집의 얇은 외벽을 쓸어내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곤 했는데, 문밖에서 낙엽이 바삭거리는 소리라도 날라 치면 도이는 책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도 어김없이 눈을 들었다. 그는 키리마루가 잠자리에 들면 등을 비스듬히 놓아 머리맡까지 빛이 들지 않게 하면서도 저는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언젠가 키리마루가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훅, 눈이 떠진 순간 이마를 스치고 낮은 바람이 불었다. 어디에서 불어온 바람일까 생각하기도 전에 등불이 꺼졌다. 어둠. 적막. 먼저 기척을 내는 사람이 지는 놀이 같았다. 키리마루는 저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숨을 죽이며 도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도이는 앉은 자세 그대로 천천히 눈만 돌려 꺼진 등잔을 흘겨보았다. 그는 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 팔꿈치 아래에 펼쳐진 두루마리가 무색했다. 도이는 어둠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것처럼, 조용히, 만약 그 눈싸움에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문일 것이다. 열리는 일이 없는 문은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두워서 표정이 잘 보이지가 않았지만 도이의 옆얼굴도 꼭 그러했다. 기다림은 그런 표정이구나, 하고, 졸음에 겨운 머리 한 구석으로 생각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잊고 까무룩하게 다시 잠에 든 것 같았다.
기다림이 답을 얻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키리마루는 어렵지 않게 그 대상을 알아차렸다. 야마다 리키치는 학기 중에 인술 학원에 찾아오는 것처럼 가끔씩 그들의 집에 들렀다. 야마다 선생님의 전언을 가지고 오거나, 아니면 근처에 임무가 있어서 들렀다든가. 매번 비슷한 이유가 그의 방문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는 한 번도 그저 얼굴을 보기 위해서 왔다, 라고 말한 적이 없었지만 한 번 찾아오면 어둠이 켜켜이 들어찰 때까지도 눌러 앉아 있곤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실 없는 대화를 나누고, 그것도 아니면 가끔씩 집안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키리마루는 그런 만남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종종 생각해보곤 했다. 그럴 시간에 나가서 일을 하면 돈이라도 벌 텐데. 물론 대신 빨래를 걷어주는 일은 매우 편리했으므로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도이 선생님은 왜 그를 기다리는 것일까?
리키치 씨는 왜 꼬박꼬박 여기를 찾아오는 것일까?
그들의 집은 학기 중에는 반쯤 비어 있다시피 했으므로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빈말로도 누추하지 않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리키치는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긴 친분이 있었으므로 그의 방문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키리마루는 그 밤, 오랫동안 어둠을 쳐다보던 도이의 옆얼굴을 기억했다. 누군가가 기다림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 날 이후 그의 은유는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되었다. 사람들의 행간은 언제나 명징하지 않은 것에 머물렀다. 예를 들자면, 삯을 깎아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눈빛으로 그것을 암시했고 부러 목소리를 높여 일의 하찮음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지 못할 일도 아니었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항상 같았다. 도이의 시선과 거기에 따라나오는 결과도 비슷한 원리였다. 기다림은 언제나 리키치의 방문과 함께 멎곤 했으므로.
키리마루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 겨울이 끝나기 전이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저는 상관 없다는 듯 하릴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도 추위는 여전히 매서웠다. 키리마루는 오랫동안 찬 데 내놓아 발갛게 부어오른 손을 서로 맞잡아 비비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막 뉘엿하게 가라앉기 시작한 밤이 지붕 위에 이미 드리워져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어섰다. 뒤에서 바람이 등을 아플 정도로 두들겼지만, 다시 발을 뗐을 땐 걸음의 속도는 한층 줄어들었다. 이상하다. 도이 선생님이 집에 계실텐데. 장은 이미 닫았을테고, 이렇게 어두워서야 빨래를 하러 갈 일도 없었다. 밖에 나다닐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고, 만약 있다손 치더라도 분명 그에게 먼저 집을 비운다고 말했을 텐데…… 생각이 살금살금 내딛는 걸음에 줄줄이 따라붙었다. 왜 자신이 기척을 죽이고 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밤, 잠에서 깼으면서도 일어나지 못한 것과 비슷했다. 알지는 못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예감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조금, 시선을 꽂아 넣을 만큼의 틈을 가지고만 문을 열었다. 문소리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선이 좁은 틈새를 따라 비집고 들어갔다. 도이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리키치는 바로 옆에 엎드린 채 누워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한쪽 팔에는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남은 손들은 서로 얽혔다. 손가락 사이의 빈 곳을 채우려고 드는 것처럼 촘촘했다. 방 안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둑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비어 있는 엄지는 드러난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것을 목도하고는 키리마루는 곧장 문 틈새를 닫았다.
그는 문에 등을 기대었다. 문짝은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파랗게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생각이 오고 갈 때마다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튕겨올랐다. 충격보다도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대거리를 하며 물고 늘어질 기분은 역시 들지 않았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어딘가,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눈 앞에 내어진 결과보다도, 그는 좀 전에 보았던 것을 생각했다. 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언어들이 가득찬 네모진 방 안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가 처음으로 목도한 명징한 사랑의 형태였다. 이제 그의 안에서 연정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손등을 쓰다듬는 것이 되었다.
"어쩔 수 없지."
그는 허공에 하아, 길고 흰 숨을 뱉어내었다. 키리마루는 잰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겨울 산책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키리마루의 시점에서 리도이가 써보고 싶었음.
원래는 이 뒤에 파국... 리키치 전쟁나가서 디짐... 이런 거까지 다 써보고 싶었는데 힘이가 든다... 나중에 생각나면...
내 1학년 최애는 키리마루. 최애 조합은 도이+키리마루 (커플성향x). 도이선생님 리키치랑 결혼해서 키리쨩을 양자로 들여주세요! (정신나간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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