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도이/ 닫힌 밤



 도이 한스케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있었다. 그는 긴장이 될 때마다 손마디를 하나씩 세었다. 아직 스무 살이 되기 전, 그에게는 긴장할 일이 뼈마디의 개수만큼이나 많았다. 그날의 일도 그 중 하나였다. 풀숲에 숨어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에 조금씩 호흡을 날려 보냈다. 마치 거기에는 숨을 쉬는 사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처럼. 수리검은 오른손에 쥐었다. 왼손으로는 도드라진 뼈의 골격을 매만졌다. 하나, 둘, 셋, 넷. 엄지가 마디를 하나 넘을 때마다 바짝 들떴던 숨결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도망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막 들었을 때였다.

 눈이 마주쳤다.

 몸을 일으키자 나뭇잎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소리를 냈다. 곧장 발을 뒤로 빼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살갗에 스치는 감각으로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의 상처가 요란하게 욱신거렸다. 일을 하다 보면 추이를 예상하는 실력만 늘어간다. 곧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동료가 오랫동안 살아 있었던 적은 없다. 그런 생각이 자신의 일이 되자 턱 아래가 싸르르해졌다. 죽는다. 죽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런 예감들을 넘나들며 살아왔다.

 숲이 끝나는 지점은 절벽이었다. 반사적으로 걸음이 멈췄다. 도이는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죽는다, 죽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항상 망설이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는 숨을 참은 채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뒤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알고 있다. 야마다 씨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인도 그러했다. 다만, 리키치는 자신에게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주 단순하고 간명한, 어린아이의 심술이었다. 그런 나이대의 아이를 대하는 것은 아주 오래간만이어서 조금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가 몇 해를 살아온 세상에는 아이들이 적었다. 집이라는 공간도 없었다. 가족은 더더욱 드물었다. 밤이면 등불을 켠다. 다른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에 든다.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한다. 장지문 너머에서 바람 소리를 듣는다. 제때 밥을 먹는다. 그런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다는 것을, 오래 잊고 있었다.

 리키치는 과연, 어린아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뚜렷한 계기 없이도 화를 풀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도이의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상처가 나아가는 시점부터 도이는 자잘한 집안일들을 돕고 있었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으면 뒤에서 나직하게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면, 모르는 척 뒷짐을 지고 삭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뚝뚝 부러트리느라 바쁘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왜 그러는 걸까요, 하고 어색하게 묻자 야마다 부인은 웃었다. 형 같이 느껴지는 건가 보죠. 아버지도 아니고 제 또래도 아닌, 성인 남성을 대면하는 것이 처음인가보다 했다.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형제는 이런 느낌인 걸까. 실없는 감상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여유로웠다.

 리키치에게 그의 버릇을 알려준 것은 우발적인 일이었다. "수리검을 던질 때마다 자꾸 손이 엇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상담을 들어줄 정도로 친해졌을 무렵이다. "너무 긴장하는 것 아니야?" "어떻게 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직 결이 고운 어린 손을 매만지며 그 버릇을 알려주었다. 습관이 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익숙해지면 괜찮아, 하는 말을 하면서.

 그런 계절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명령으로 조사를 나간 지역에서 리키치를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변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무를 숲에 숨기는 것처럼, 사람을 숨기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이 가장 좋다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법칙이다. 도이가 리키치를 본 것은 근 반 년 만의 일이었다. 시장바닥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주고받고 흥정하는 소리가 왁자했다. 생선이, 빗이, 사과가, 새로 들어온 천이, ……. 그런 소리들 속에서 시선이 빠르게 오고 간 순간 도이는,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게 어떤 때였더라, 하고 떠올렸다. 잘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리키치는 눈이 마주치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조금 피곤한 듯 보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뭔가. 도이는 그 얼굴이 낯설다고 생각했다. 최근 뜸했다고는 해도 몇 해를 보아온 얼굴인데 낯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낯익다는 것이다. 그것이 야마다 리키치의 얼굴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매하고 껄적지근한 기시감이었다. 그 익숙함에 소스라치듯이, 도이는 고개를 돌려 멀어지려는 리키치의 옷자락을 쥐었다.


 "사토, 군."


 일부러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 반 박자쯤 어물거리던 리키치가 뒤따라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누구를 마주칠지 모르니 사람 많은 곳에서 흔적은 숨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로가 안다. "아, 이런데서 마주치네요." "응. 군은 무슨 일이야?" "뭐, 아시잖아요. 선…… 그쪽도?" "그렇지, 뭐."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 수레가 그들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발걸음을 길 가장자리로 물렸다. 리키치가 손바닥으로 제 눈가를 한 번 눌렀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느리다.


 "묵을 곳은 있고?"

 "아직이요."

 "흠."


 말끝의 정적이 어색하다. 이런 사이였던가,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니 반년이면 어색해지기에 차고 넘칠 만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이상한 기분이 들어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러면 같은 곳에 묵을래? 방을 같이 쓰면 돈이 절반이라서 좋잖아." "키리마루 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싫어?"

 "아뇨, 싫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대답이 빨랐다.






 겨울의 해는 이르게 진다. 방은 가장자리부터 새파랗게 어두워졌다. 일찍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왔다. 조금 더 밖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닌자의 일은 낮이 아니라 밤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까, 생각했지만 리키치는 피곤한 낯빛과는 달리 잠을 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문 쪽에 앉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옅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턱 선이 말라 보였다. "살이 빠졌어?"하고 묻자, "잘 모르겠어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벽에 기대어 세워둔 화승총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대화는 드문드문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최근의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들의 근황으로 흘러간 말들은 결국 일에 대한 얘기로 한데 모였 다. 리키치는 서두르지 않는 말씨로 입을 열었다.


 "산을 넘어서 왔는데…… 그 와중에 두 명이 죽었어요."


 장작 개수를 세듯이 손가락을 꼽아본다.


 "원래는 세 명이었어요. 한 명은 잠을 잘못 자서 동사했고…… 나머지 한 명은 활에 맞았어요. 독이 발라져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빨리 죽었거든요."

 "리키치 군은?"

 "저는 겨울 산에는 익숙하니까요."


 둘은 동시에 호뇨센을 떠올렸다. 겨울이면 얼음이 잘 녹지 않아 산길을 내려갈 때마다 덧신을 신어야만 했다. 어린 리키치는 제법 산을 잘 탔다. 산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눈이 녹은 자리만을 골라 짚어 걸어가는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넘어질 일은 없었다. 불현듯 대화가 멈추고, 도이는 그 겨울을 떠올렸다. 그가 회상한 것은 그들이 같이 보낸 겨울이다. 도이는 아직 선생님이 아니었고, 리키치는 그의 허리께까지밖에 오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문득, 도이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차근히 리키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표정이 적은 낯이었다. 오랜 물살에 마모되어 둥글어진 조약돌과 같았다. 도이는 사람의 안에도 닳아 없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겨울의 그가 그러했었다. 그리고 또, 그가 그랬듯이, 지금의 리키치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입 안쪽이 따끔했다.


 "그러면 안 돼, 리키치 군."


 자신의 손끝을 보고 있던 리키치가 고개를 들었다.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게 되면 안 돼."

 "……예의 같은 걸 따질 처지는 아니잖아요."

 "나는 지금 예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방 안은 어느새 깜깜해져서 서로의 표정을 알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도이는 허공을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이 갑자기 막막해졌다. "익숙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 돌을 깨문 것처럼 입 안이 아렸다. 말이 아니라 자갈을 뱉어 놓은 것 같았다.

 한참을 침묵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있죠?"


 대답은 어둠 속에서 돌아왔다. 도이는 순간 숨을 참았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한다. 열 몇 살 무렵의 도이는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죽음이 너무 쉬웠던 시절이 있었다. 밥을 먹는 횟수보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횟수가 더 많던 계절도 있었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지나가지 않는 밤들이었다. 하지만 리키치에게는 부모도, 친구도, 동료도 있었는데.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점점 더 깜깜해졌다.

 정적이 방의 구석구석을 빠듯하게 메웠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리키치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미닫이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빈 바닥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도이는 리키치가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사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서러워질 쯤, 리키치는 다시 돌아왔다. 장지문에 불빛이 먼저 희끄무레하게 비쳤다. 그는 손에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등불을 들고 있었다. 아마 집주인에게 받아온 것일 테다.

 리키치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등불을 방 한중간에 내려놓았다. 그때 아직 열려 있던 문틈으로 바람이 불었다. 불빛이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그의 얼굴에 번졌다. 빛 그림자가 눈가에 일렁인다. 마치 눈물 자국 같다.


 "왜 울어요?"


 도이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바닥으로 눈가를 훔쳤다. 손가락 사이가 금세 축축해졌다. 도이는 조용히 울었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다.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네가 울지 않으니까……."


 그 말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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