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모브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게 있다. 카게야마 리츠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저녁 밥을 먹고, 그릇을 닦아 놓고, TV 앞에 앉아 있는 시게오와 몇 마디 말을 나눌 때였다. 리츠는 소파 뒤에 서 있었다. 부엌에서 반찬들을 정리하던 엄마가 문득, 거실 쪽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얘, 리츠. 키가 좀 큰 거 아니니?" 리츠와 시게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리츠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무심코 내려놓았다.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큰 것 같아. 소파 등받이가 아래에 있잖아." 그런가, 하는 탄식 같은 대답은 시게오의 입에서 나왔다. 그가 리츠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종종 투명하다. 리츠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문득 소스라치듯이 눈길을 물렸다.


 "시게, 한 번 일어나봐."


 시게오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소파 팔걸이를 돌아 다가왔다. 성큼 가까워지는 걸음걸이에 망설임이 없다. 리츠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뒤로 뺐다가 문득 천장을 쳐다보았다. 하얀 전등 불빛이 어지러웠다. 뺨이나, 이마 같은 곳이 스칠 것 같은 거리를 의식하자 더욱 그랬다. "어머, 리츠가 더 큰 것 같네." 그 말에 시선이 반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게오가 제 정수리에 대고 있던 손을 리츠의 앞머리께에 대고는, 부스스 웃었다. "그러네……" 아주 조금, 그의 눈동자가 자신보다 아래쪽에 있었다.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의 차이였지만, 확실히 그러했다. 그런 생각들은 그의 좁고 마른 어깨와 그 아래의 가는 팔, 흰 손등, 굳은 살이 없는 손바닥……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런 흐름을 끊는 것은 어려웠다. 리츠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형이 동생한테 추월당해서 어떡해?"

"괜찮아."


 리츠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인 말 역시 투명하다. 이럴 때면 가끔씩 리츠는, 아주 어릴 때 가 보았던 아쿠아리움의 수족관을 떠올렸다. 푸른 물빛을 투과시키던 유리창들. 가까이 붙어서서 가오리나 고래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유리 위로 하나 둘 씩 손자국이 남았다. 그럴 때의 희미한 죄책감 같은 것들, 그런 것들.

 리츠는 그런 기분으로 시게오의 어깨를 꾹 잡았다가 놓았다. "형도 금방 크겠지." 손바닥이 차갑고 얼얼했다.






 밤은,


 리츠는 눈을 떴다. 눈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졌다. 천장 모서리의 윤곽을 눈으로 구분할 수 있을 때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어두워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둠이 발에 채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던 도중에 깼는데도 졸리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시게오의 방까지는 눈을 감고도 걸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츠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이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방문을 열고는 잠시 문간에 서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츠는 천천히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시게오는 몸을 조금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이불 위로 드러난 실루엣이 얄팍했다. 좁은 어깨도, 가는 팔도, 마른 목과 손목도, 그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주 가까이 다가서도 시게오는 좀처럼 잠에서 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리츠는 그의 머리 옆을 손으로 짚었다. 삐걱, 소리가 크게 났다.

 아쿠아리움에서는 손을 잡고 다녔었다. 리츠는 모서리를 그때 수족관 안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카게야마 시게오는 그럴 수 있었다. 무서운 한편, 잡은 손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 두 가지가 몽롱하게 뒤섞여서 투명한 눈동자를 가진 열대어들처럼 떼지어 물 속을 떠돌고 있었다. 투명하고, 파랗고, 어지러웠다. 리츠는 그런 것들에 사이에서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어떤 고래나 상어도, 카게야마 시게오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았다.

 리츠는 한참동안 그를 내려다보았다. 






 다음날에는 열이 났다.


 "성장통인가보다."


 오랫동안 침대를 짚고 있던 손목이 아팠다. 그런가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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