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모브/ 개종



 어렸을 때 레이겐 아라타카가 살던 동네의 서쪽에는 큰 성당이 하나 있었다. 성당의 높은 첨탑은 뒷산에 올라가면 더욱 잘 보여서, 거리를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로 쓰이기도 했다. 그가 아직 신성神聖이라는 단어를 모를 때였다. 종교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고, 있을 리도 없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같은 구절로 시작하는 구약 성경의 내용은 모호했고 나이가 두 자릿수를 채우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했다. 덕분에 그와 동네 아이들은 미사 때가 아니어도 열려 있곤 하던 대강당을 곧잘 놀이의 장소로 쓰곤 했는데, 몇 번쯤 보좌 신부에게 쫓겨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았다.

 대강당의 단상은 붉은 천으로 덮여 있었고 그 아래에 숨어드는 것은 레이겐의 버릇 중 하나였다. 몇 개씩 늘어선 긴 의자 밑이나 두꺼운 커튼 뒤로 숨는 것은 다른 아이들도 자주 하는 일이었으나 누구도 감히, 높다란 단상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덕분에 요 며칠 숨바꼭질 때면 레이겐은 누구에게도 잡히는 일이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술래가 크게 숫자를 세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레이겐은 보폭이 큰 뜀박질로 성당 안에 뛰어들었다. 대강당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도 없었다. 불이 꺼져 있었다. 낮은 계단을 단숨에 뛰어오르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단상에 드리워진 천은 언제나 부드러웠다. 그 촉감은 어머니가 책꽂이 위쪽에 보란듯이 꽂아 놓은 오래된 서양 소설에 나오는 실크, 공단, 레이스 같은 단어들을 연상시켰다. 레이겐은 단상 아래의 빈 공간으로 쑥 들어갔다.

 천이 다시 덮이자 시야가 어두워졌다. 소리들은 아주 멀어졌다. 레이겐은 반사적으로 숨을 참다가 이내 지루해졌다. 술래는 아주 오랫동안 그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바닥은 차가웠고 먼지들이 드문드문 떠다니는 공기는 바싹 말라 있었다. 얄팍한 인내에 지친 그는 천을 조금 걷어 바깥을 쳐다보았다. 그래봤자, 보이는 것은 그의 정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십자가 뿐이었다. 그는 턱을 조금 들어 십자가의 꼭대기를 올려다 보았다. 예수의 형상이 양각되어 있었다. 시선을 더 올리자 창문 위쪽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에서 바깥의 햇볕이 희미하게 비쳐들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둑한 천장 위로 불빛이 얼룩덜룩했다.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과 파란색.

 적막했다.

 전날에는 TV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잠을 설쳤다. 그래서인지 몽롱했다. 대강당 안은 소리가 울리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아주 작은 발소리도 반사시켰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와, 십자가 뿐이었다. 바깥은 봄이었지만 실내는 서늘했고, 어두웠기 때문에 마치 아주 다른 세계의, 다른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묘한 부유감에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그는 검고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신부들과, 머리카락을 가리고 다니는 수녀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의 금욕적인 낯이 무엇을 추종하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구체적이고 명민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종교가 이런 것, 적막, 서늘함, 빛, 침묵, 외따로 떨어진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걸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그의 부모가 다섯 시간 가까이 그를 찾아다녔다는 얘기는 하루가 더 지난 뒤에야 들었다. 집에 가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혼쭐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한바탕 작은 소동이 일어난 탓에, 후에 대강당의 문은 쓸 일이 없을 때는 잠기게 되었고 더 이상 레이겐은 그곳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종종 그때 느꼈던 이상한 기분을 생각하곤 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나서는 이내 잊었다.

 신성이라는 단어의 뜻은 나중에 알았다.






 의뢰인의 집에는 파란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화분이 있었다. 레이겐은 화분 아래쪽에 빛이 뭉쳐 테이블 위로 푸른색을 반사시키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의뢰인의 말은 길고, 이런저런 곳으로 튀기 일쑤였기 때문에 좀처럼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옆에서 덩달아 얘기를 듣고 있는 모브는 별로 지루한 기색도 없어 보였다. 그 흰 뺨에서 표정을 읽어내는 것을 포기한 레이겐은 이번에는 의뢰인의 긴 머리카락 끝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사십 분 넘게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아무도 건드린 적이 없는데 집의 구조물이 자꾸 바뀌고, 아마 유령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이 길고, 체구가 작고, 적잖이 나이가 있는 의뢰인은 심약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레이겐은 집을 살펴보는 척 고개를 틀며 작게 하품을 했다.


"어때, 모브. 뭔가 느껴져?"


 모브가 눈을 깜빡였다.


"네. 음…… 하지만 나쁜 느낌은 아닌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 같아?"

"이 방 안에는 없어요."


 레이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뢰인도 주춤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미닫이 문을 열고 나서서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아무도 없네요." "바깥 양반은 지금 일을 나가서요. 아이들은 출가한 지 오래고." "혼자 집에 계시는 일이 많으신가보군요." "네, 그래서 더, 무서워서……" 나무로 된 계단은 밟을 때마다 삑삑거리며 낡은 소리를 냈다. 천장이 낮아 계단 위쪽에서 레이겐은 고개를 조금 숙여야만 했다. 2층 역시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고, 사람 사는 흔적이 꼴사납지 않게 묻어나는 모양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이 위층도 있나요?" 올라오는 내내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모브가 불쑥 물었다. "위에는 다락방이 있는데……" "있는데?" "사다리가 있어야지만 올라갈 수 있어요."

 의뢰인은 방 안쪽에서 나무 사다리를 들고 왔다. "네가 먼저 올라가." 모브는 군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체구가 작은 그는 느릿느릿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레이겐이 그 뒤를 따랐다. 다락방에는 해가 잘 들었다. 그리고 먼지 냄새가 났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고, 요즘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고풍스러운ㅡ혹은 촌스러운ㅡ 디자인의 커튼과 의자, 서랍장 같은 것들이 질서 없이 놓여 있었다. 레이겐은 의자 등받이 위로 늘어진 커튼을 한 번 만져보았다. 부드러웠다.

 해가 정면에서 들고 있어서 눈이 시렸다. 레이겐이 눈을 길게 감았다 떴을 때 모브는 장롱 뒤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뢰인이 막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그녀의 치맛자락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콜록, 낮은 기침 소리. "왜 여기에 있어?" 그렇게 말한 것은 모브였다. 레이겐이나, 의뢰인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의뢰인이 합,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레이겐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모브가 먼저 덧붙였다. "악령은 아니에요. 그냥…… 지박령 같은 건데." 레이겐으로서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는 대답 대신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 의뢰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모브가 무릎을 굽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안 그래도 몸집이 작은 그가 더 자그마해 보였다. 그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얘기를 하는 듯, 한 곳을 응시했다. 그는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표정은 없었다.

 모브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했다. "요 앞 큰 길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대요. 어린앤데…… 성불하려고 했는데, 이 집을 지나가다가 너무 쓸쓸해보여서, 아, 그러니까, 의뢰인 분이요." 그가 고개를 돌려 의뢰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냥, 여기 있고 싶었대요. 물건들을 옮겨 놓은 건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나봐요."

 잠시 놀란 얼굴을 하던 의뢰인이 딸꾹, 다시금 딸꾹질을 했다. 딸꾹, 딸꾹.


"그, 그런 건…… 아니, 물론, 요즘엔 애들도 더 이상 없고…… 쓸쓸했던 건 맞지만요. 그래도 그런 건 별로 반갑지 않아요. 네? 무섭다구요."


 그녀가 목에 걸린 사탕처럼 말을 뱉어냈다. "그거, 없애줄 수 있죠?" 그 말에 모브는 이상할 정도로 오래 의뢰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레이겐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 할쯤, 그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마치 바닥을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겐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의 눈꺼풀을 보았다. 무덤덤한 낯이었지만 간혹가다 눈꼬리가 잘게 움직였다. 그는 레이겐도, 의뢰인도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응, 그러네…… 미안해."


 그가 작게 말했다. 너무 작아서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가 느리게 창문으로 다가갔다.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창틀은 뻐근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바람이 바깥으로 불었다. 창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밖으로 바람이 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허공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먼지들이 바람에 쓸려 빠져나갔다.


"나갔어요."


 모브가 짧게 말했다. 그는 창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빛이 그의 등 뒤에서 들고 있었다. 햇빛이 그의 어깨의 윤곽을 덧그리며 손끝까지 떨어졌다.


 "정말이에요?"

 "정말로요."


 문득 눈이 마주쳤다. 조용했다.






 사례비를 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타코야끼를 샀다. 뜨끈한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강변을 따라 역까지 걸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수면이 붉게 젖어 있었다. 레이겐은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옆에서 걷고 있는 모브의 얼굴을 문득 살폈다. 여전히 아리송한 무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썹이 약간 내려가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눈가를 매만졌다. "왜요?" "그냥." 도드라진 눈썹 뼈를 만지다가 뺨을 한 번 쓸고 손을 내렸다. 부드러워서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까 말야. 왜 사과했어?"

 "네?"

 "그, 영한테 말야."


 모브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눈을 굴렸다. 그는 항상 천천히, 신중하게 말했다.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제가 아니면 아무도 그 애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 애, 였다. 레이겐은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빙빙 돌리며 그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카게야마 시게오는 다정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알지 못할 사실이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남들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면서 다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의 세계는 레이겐의 그것보다 몇 걸음쯤 더 멀었고, 레이겐은 가끔 그 거대함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어렸을 적 살던 동네의, 성당의, 해 질 무렵마다 들리던 종소리가 떠올랐다. 길고 낮게 울리던 소리, 적막, 서늘함, 빛, 침묵, 외따로 떨어진 것. 그런 것들.

 신성이라는 것은 그런 것들의 통칭이었다. 그는 여전히 종교가 없었지만, 만약 무언가를 믿는다면 그의 다정함을 믿어도 좋을 것 같았다.


 "……손 잡을래?"


 불쑥 그렇게 말하자, 모브는 문득 수줍은 낯을 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가만히 와닿는 손바닥의 감촉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천국은 아마 그런 온도일 것 같았다.







신성 (神聖)

[명사] 1.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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