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이즈마코


* 모브 여캐 주의





 유우키 마코토가 그 여자애의 손끝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는 것을, 세나 이즈미는 마코토 본인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그 여자아이의 이름이 타케다 리코라는 것도 그가 마코토보다 더 먼저 알았다. 일반과의 1학년이라고 하는 그 여자아이는 키가 작았다. 모델 일을 하면서 보았던, 몸 선이 길죽길죽하고 세련된 여자아이들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래, 이런 타입의 아이를 좋아하는구나. 그 깨달음은 그다지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어찌됐든 세나 이즈미는 그의 이상형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 놓은 복숭아색 손톱을 집요하게 쳐다보는 눈길이, 자신이 그의 모양 좋은 눈동자나 옆얼굴을 오래 쳐다보던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때의 그 이상하고 불쾌한 느낌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즈미는 어깨 부근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목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목 언저리가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예민한 그는 어깨를 몇 번이나 주무르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그럴수록 오히려 뭉친 것이 점점 단단해질 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랬다. "짜증나." 라고, 씹어뱉듯이 말하자마자, "어머, 왜 또?" 하고 묻는 소리가 되돌아왔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천연덕스럽게 그의 뒤에 서서 어깨 위에 양 손을 올렸다. "요즘 저기압이네~ 안 그런 적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서도." 이즈미는 그 손을 떨쳐내듯이 고개를 홱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덧붙이고 나서 아라시는 그의 머리꼭지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욕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가 앉아 있는 교실에서는 바깥이 잘 내다보였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에서 열기 어린 공기가 배어들어왔다. 해가 잘 드는 오후였다. 남향으로 난 창가에는 시종일관 선명한 햇빛이 머물러 있었다. 세나 이즈미의 얼굴에도 음영이 선명했다. 아라시는 그가 부활 도중도 아닌데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볕 아래에 있는 것에 조금 의아해졌다가, 창밖을 내다보고는 이내 납득했다. 유우키 마코토는 한껏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키가 작은 여자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즈미가 그의 인영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아마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엇을 보고 웃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아라시는 이내 좀 전보다 더 의아해졌다. 세나 이즈미가 저 모양을 그냥 보고만 있다니. 그, 세나 이즈미가?


 "이즈미쨩, 괜찮은 거야?"

 "뭐가?"

 "저거 말이야 저거. 사랑하는~ 유우군이…… 응?"


 이즈미가 턱을 괸 채로 그를 돌아보았다. 불쾌한 것 같았지만, 불쾌한 것만은 아닌 듯한…… 외국어로 쓰인 책처럼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아라시가 재차 그에게 물으려는 찰나, 레오가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왔다, 는 너무나 부드러운 표현이었고 말하자면 들이닥쳤다. 츠카사가 리더를 부르는 소리가 저 먼 복도 건너편에서부터 아련하게 들려왔다. 뒤이은 일상적인 소동에 아라시는 그 질문을 잊었다. 그가 그 이상한 표정을 다시 떠올린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고, 그때는 이미 때가 지나가버린 후였다.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또각, 손톱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무언가 중요한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 마냥 유독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때 부실 안에는 그와 마코토밖에 없었다. 이즈미는 반사적으로 그를 돌아보다 말고 들고 있던 수건과 스포츠 드링크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 마코토의 빈 손을 낚아채자 마코토가 고개를 홱 들었다. 그 표정이 전에 없이 살벌해서 이즈미는 엉겁결에 쥐었던 손을 놓칠 뻔 했다. 도리어 힘을 주어 손가락을 누르자 그제야 마코토가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냈고, 무표정하던 얼굴이 와락 구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뭐야, 너!" 이즈미가 그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부러진 손톱 아래로 붉은 핏물이 구물구물 스며나오고 있었다. "예쁜 손끝을 이렇게 다루면 어떡해!" 그가 왼손을 마구 쥐고 흔드는데도 마코토는 조금 얼이 빠진 낯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제가 뭘 하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아 더욱 이상했다. 이즈미는 그의 반대편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빠르게 쳐다보았다. 라인 창 위의 이름이 일순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아직 답이 오지 않은 메세지였다. 이즈미가 한쪽 손을 손수건으로 동여매도록 내버려두면서도 내내 그는 휴대폰 액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일도 있었고,


 필통 안에 분홍색 펜이 들어 있었다. 펜 뒷축에 꽃 모양 장식이 달려 있는 팬시한 물건이었다. 마코토가 으레 쓸 법한 물건은 아니어서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숨기듯이 필통을 닫았다. "네 물건이야?" "아뇨, 그……" 말하기를 조금 주저하는 것을 보며 이즈미가 문득 떠올린 것은 언젠가, 아직 마코토가 모델 활동을 할 적의 일이었다. 겨울이었고, 며칠 내내 눈이 내리고 있었고, 마코토가 대기실에 벗어둔 장갑 두 짝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을 앞에 두고 서성거리던 일이 있었다. 결국 그 중 한 짝을 급하게 코트 안주머니에 밀어넣고는 내내 모른 척하던 기억이었다. 한 번 그렇게 시작한 일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자 가책이 무뎌지면서 공공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때, 장갑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에 비치던 약간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죄책감과 자의식과 미묘한 흥분을 감추지 못한 표정. 유우키 마코토가 지금 꼭,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랬다.


 사랑에도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처럼 학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목 아래가 열이 오른 것처럼 간질거렸는데, 조금 나중에서야 세나 이즈미는 그 느낌에 영향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우키 마코토에게 가장 길고 끈질기게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 것은 세나 이즈미였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옳은 항과 계산 결과를 가진 식인지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그는 바깥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변함 없이 모든 것이 선명했다.



'2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사카즈/ 봄의 폭풍  (0) 2016.11.25
토모와타  (0) 2016.08.02
레이모브/ 책상 밑 어둠  (0) 2016.03.26
쇼우리츠/ 바다  (0) 2016.03.09
레이모브/ 개종  (0) 201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