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카제 토나이는 별 볼일 없는 농가 출신이었다. 그는 농가의 여느 아이처럼 형제가 많았다. 그는 4남 1녀 중 셋째였고, 위의 두 형과는 나이 터울이 제법 났다. 그다지 눈에 띄는 위치는 아니었다. 집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면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것이 그의 몫이 되곤 했으므로, 제 일이 끝나면 잽싸게 바깥으로 나다니는 것 또한 그 또래의 남자애들과 다름이 없었다.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멱을 감고 놀았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면서 놀았다. 그런 계절들은 언제나 쏜살같아서, 정신을 차려보면 모내기 철이 되어 있고, 또 정신을 차려 보면 수확철이 되어 있곤 했다.
토나이가 처음으로 불온함을 느낀 것은 그의 키가 집에 있는 큰 기둥의 절반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옆집의 히로는 동물을 좋아했다. 소년은 아이들과 놀다가도 시간만 되면 송아지에게 여물을 챙겨주러 겅중겅중 뛰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길모퉁이에 사는 카에는 손재주가 좋았다. 그녀는 그보다 겨우 한 살 밖에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만든 옷가지며 베갯잇 따위가 방 구석에 바리바리 쌓여 있다고 했다. 그의 큰 형은 시장에서 염색집을 하는 여자애한테 홀딱 반해 있었다. 그 아가씨에게 청혼을 하려고 몰래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부모님만 빼고 동생들은 다 알았다. 작은 형은 상인이 되고 싶다는 소리를 자주 했다. 어차피 집안의 논과 밭은 전부 큰 형의 몫이 될 터이니, 자기는 제가 잘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그는 곰살 맞고 말재주가 좋아서, 5분만 얘기해도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 것들. 토나이는 평범한 아이였다. 누구보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일을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달리기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수영을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주 어린 것도 아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가 그를 미처 빼먹었다 하더라도 별로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을 묻지 않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너는 무엇을 좋아하냐고, 혹은 무엇을 잘하냐고 물으면 아마 그는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의문을 가지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어느 날의 저녁 때까지는 그랬다. 노을이 집의 지붕과 마당을 적시고 있었다. 토나이는 누군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풀썩 마루에 앉아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날은 할머니가 장독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온 가족이 모시고 의원에게 갔다고 했다. 어린 두 동생은 옆집에 맡겨 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적막이었다. 토나이는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형제들과 함께 쓰는 방은 북향이어서, 이 무렵이면 이미 방 안에 빛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이면 누군가가 항상 등잔 불을 켜놓곤 했는데, 얇은 장지문 너머에는 희미한 어둠이 있었다. 토나이는 그 문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모르겠으면서도, 고민했다. 그 골몰함에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방은 비어있었다. 구석에 엉성하게 개어 놓은 이불과, 앉은뱅이책상과, 꺼져 있는 등불.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토나이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제 방이니 들어오기는 했지만, 친숙한 공간은 친숙한 만큼 생경했다. 그는 가족이 많은 집의 아이가 으레 그렇듯이 사람이 없는 공간에 익숙하지 않았다. 토나이는 등불을 켤 생각도 안하고 방의 한 중간에 앉았다. 비어있는 공간과, 적막과, 식어가고 있는 낮의 미지근한 온기를 품은 얇은 어둠.
그는 그것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어두워서라든가, 너무 조용해서라든가, 그런 원초적인 이유와는 또 달랐다. 그는 바닥을 손으로 짚고 앉아 생각했다. 이 생소함은 반쪽짜리 생소함이었다. 그는 이런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없다면,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다면, 누구도 불을 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도 그런 명확한 무언가가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은근하게 알아차렸다. 물을 쏟으면 아래로 흐르고 불을 붙이면 재가 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알았다.
등 뒤에서 해가 빠르게 지고 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의 가족들이 돌아온 것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방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머니였는데, 방의 한 중간에 주저 앉아 불도 켜지 않고 엉엉 울고 있는 그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 것 같았다. 그녀는 재빠르게 문을 닫고 그에게로 다가와 앉았다. 약간 서늘한 손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전혀 부드럽지 않은, 허드렛일에 익숙한 마른 손이었다.
"열은 없는데. 혼자 있는 게 많이 무서웠어?"
토나이는 고개를 끄덕여야할지 저어야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있는 것은 무서웠지만, 그녀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만……" 입을 열자 딸꾹질이 쏟아져나왔다. 어머니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말도 입에서 같이 쏟아졌다. "아무것도 없어서, 그게……" 방문 밖에서 형제들이 낮은 목소리로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렴풋이 들렸다. 왜 울어? 몰라, 겁이라도 먹은 건가…… 라든가, 정말로 울어? 라든가. 그는 말소리를 낮췄다. "옆집 히로도, 건넛집 카에도, 형들도, 또 다른 애들도 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어서……" "뭐가?" 그 물음은 어려웠다. 그것은 아직 나이가 두 자릿수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말로 풀어낼 수 없는 종류의 언어였다. 대답을 찾으려 골몰하는 사이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말이 되지 않은 웅얼거림이 울음과 함께 섞여나왔다. 어머니가 그의 뒷머리를 쓰다듬다가, 그가 다시금 울기 시작하자 그의 머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는 그 품에서 오랫동안 울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인술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때 그 날의 일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한 말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그녀는 위의 큰 형들과 아래의 어린 동생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에게 미처 신경써주지 못한 것이 평소부터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의 울고 있는 모습은 그녀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인지, 적게나마 충격을 받은 듯 그녀는 계절이 바뀌기 전에 그에게 넌지시 물어왔다. 너, 인술학원에 가볼래? 하고.
학비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또 농번기에 일손이 하나 빠진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반대하는 아버지에게도 제법 고집을 부렸다. 저 어린애가, 혼자 울고 있었다니까요. 자기한테는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러면 안되는 일이잖아요. 결국에는 아버지가 먼저 포기했다.
그로부터 여러 번 해가 바뀌었다. 토나이는 그 여름, 그 질문을 들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거냐?"
그 질문을 듣고, 토나이는 아연하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생각했다. 어제 보았던 쪽지 시험은 제법 그럴듯한 답안을 썼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면 오전에 했던 실습이 문제인가…… 싫은 소리 들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선생님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됐다. 그만 나가보렴."
미닫이 문이 등 뒤로 닫히자 문득 한숨이 나왔다. 아직 날이 밝았다. 긴 복도를 걸어 밖으로 나서면서 토나이는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그는 여전히 그 질문을 곱씹고 있었다. 그저께 냈던 작문 숙제와 저번주에 새로 배운 인술까지 되짚어보는 사이 그는 교정을 천천히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작법위원회실 앞에 도착해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센조의 피곤해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해보이는 낯이었다. 그는 토나이를 보자마자 인사 대신 물었다. "오는 길에 혹시 아야베 못 봤어?"
그리하여, 종적이 묘연한 아야베 키하치로를 찾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몫이었다. 늘 있는 일이었으므로 갈급한 마음보다는 곤란한 마음이 앞섰다. 토나이는 아야베가 있을 만한 곳을 한번에 짚어내는 적이 없었다. 마치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들이 찾는 길은 항상 엇갈렸다. 온 교정과 뒷산을 헤매고 나서야 토나이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고 아야베는 항상 그런 그의 곤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낯으로 땅을 쑤셔대고 있곤 했다.
이마가 따끔거렸다. 해가 뜨겁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바늘 끝처럼 첨예한 생각들이 뒤따라왔다. 피곤할 수록 생각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너는, 과연, 어떤, 사람이. 인술학원에 들어온 지도 3년째였지만 그는 여전히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웠다. 꼬박꼬박 품을 팔아 학비를 부쳐주는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건 더 쉬운 일이 되었다. 주어진 일을 부지런히 하다보면 누구보다 모자라거나 뒤쳐지지는 않는다는 자족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과 자신의 키를 겨루는 일일 뿐,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역시도 잘 알았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아야베 키하치로 선배."
깊은 땅밑으로 고개를 수그리자 문득 머리가 핑 돌았다. 너무 덥기 때문인 것 같았다. 토나이는 소매자락으로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야베는 뒷산의 안쪽, 나무들을 벌목해놓은 공터에 있었다. 그의 삽끝이 흙을 헤쳐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 "아야베 선배." 토나이가 거듭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아야베가 고개를 들었다.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처럼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위원회의 일이 있다는 거, 까먹은 건 아니죠?" 아야베는 대답 대신 성의 없이 손을 내저었다. 까먹은 것은 아니지만, 까먹었든 그렇지 않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토나이는 한숨을 내쉬며 무릎을 모아 앉았다. "빨리 나오시라구요." 그 말이 효력이 없다는 것은 그 자신도 잘 알았다.
해가 그의 정수리 위에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등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눈을 감았다 뜨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깜빡, 깜빡. "……오늘." 혓바닥 위에 올려놓은 단어가 생소한 것은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 같은 것 없이도 말은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어물어물 흘러나왔다. "선생님한테 뭐가 되고 싶은 거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텁텁한 흙 냄새가 났다. 아야베 키하치로에게 대답이나 맞장구 같은 것을 바라는 일은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걸 그도 알았다. 나는 왜 이런 얘기를, 이 사람한테 하고 있는 것일까. 바짝 마른 땅 위로 점점이 자국을 남기고 있는 땀방울처럼, 생각도 점점이 맺혔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요." 혀와 이빨이 부딪혀 내는 진동의 감각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는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그래도 만약에 될 수 있다면, 선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말이 생각보다 앞서고, 입 밖에 내고서야 그는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세상에 아야베 키하치로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그걸 알았다. 이 땅 위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을 수는 없어서, 그는 굳이 자신의 자리를 찾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함정을 파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일이 그를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그가 그 일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생습이었다.
문득, 흙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멈춰 있었다. 토나이는 아야베가 자신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토나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무릎에서 시작한 그림자는 뻗어나가다 말고 함정 속으로 떨어졌다. 떨어진다…….
깊은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대답은 정방형의 상자처럼 덤덤하고, 그럼에도 모서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잖아?"
그 대답과 함께 후둑, 무언가가 입가를 적셨다. 처음에는 땀인줄 알았는데 혀를 내어보자 비린 맛이 났다. 코피였다. 그제야 토나이는 자신이 한여름, 아직 쨍쨍한 오후에 한참 산 속을 헤매인 것도 모자라 볕 아래에 머리를 오래 내어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뒷목을 잡아당기는 듯 뻐근한 감각이 그제야 밀려왔다. 열사병이었다. 정말로 단지, 열사병 때문에 어지러운 것일까? 코피가 날 때는 어떻게 해야하더라. 고개를 젖혀서, 이렇게…….
머리를 들자마자 세상이 한 바퀴 거꾸로 뒤집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뒤로 넘어져 있었다. 뒷통수가 아팠고, 그와중에 풀썩 일어난 흙먼지가 매캐했다.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햇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다. 어지러웠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는 눈을 감았다. 캄캄했다.
눈을 떴을 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어느새 지상으로 올라온 아야베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를 등진 채 그를 응시하고 있는 이목구비가 어두웠다. 가장자리만 빛나고 있었다. 혼곤한 가운데, 토나이는 오랫동안 그 찬란한 윤곽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오랫동안.
글에 대한 변명이 칠만오천가지쯤 떠오르지만 하지 않는다...
나는 이 둘의 전혀 다름이 너무나도 좋다.